[한국명반]88위 빛과 소금 ‘빛과 소금 Vol.1’[한국명반]88위 빛과 소금 ‘빛과 소금 Vol.1’

Posted at 2010. 5. 30. 01:06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7-03 17:56
ㆍ음악적 심미안·센스 감성을 깨우다

참으로 유난스러웠던 시대의 파도 안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은 아무리 둔한 사람의 눈에라도 명확히 보이는 ‘발전’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 ‘발전’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닌, 팝 음악만 듣던 대한민국 사람들의 귀를 한국대중음악으로 이끈 저력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빛과 소금’이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나 신촌 블루스 같은 ‘형님 포스’도 없고, ‘천재’라는 호칭을 공공연히 듣던 김현철과도 별다른 관련이 없는, 이름부터 소박하기 그지없는 ‘빛과 소금’이. 거창한 스케일을 자랑한다거나 연주자들의 현란한 개인기들이 빛나는 노래를 찾는다면 차라리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을 권한다. 이 앨범 안에는 다만 자기 몫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연주자들의 훌륭한 연주들이 담겨 있다. 그것을 든든히 받쳐주는 것은 밴드 빛과 소금이 가진 음악적 센스와 심미안이다. 스케일이네 화성이네 퓨전이네, 오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듣는 게 낫다는 이야기는 이들의 음악을 두고 할 이야기다. 앨범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연주곡들 중에서 ‘빛 1990’과 ‘그녀의 향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얼마나 철저한 리스너이자 영민한 연주자이고, 동시에 창작자였는지 말이다.

더불어 중요한 악기로서 이 앨범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은 장기호의 목소리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통하는 듯한 그 서늘한 목소리는 무심한 듯 다정하다. 빛과 소금의 음악에 그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순간 이들의 노래는 이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차원으로 옮겨진다. ‘샴푸의 요정’을 들어보자. 이후 꽤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이 노래를 다시 불렀다. 하지만 그들이 시대적으로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원곡이 가진, 마치 사춘기 소녀 대상 화장품이나 이온 음료 광고를 닮은 산뜻함을 넘은 순결함은 그 누구도 그 이상, 아니 그대로라도 표현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불로장생의 비밀의 한 가운데, 장기호의 목소리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 앨범 수록곡들 사이사이에는 ‘내겐 노래있어’와 ‘Beautiful’ 같은, 대중음악 앨범에서 튄다면 튈 수 있는 박성식의 고스펠(Gospell) 성향이 짙은 곡들도 실려 있다. 사실 ‘빛과 소금’이라는 밴드 이름을 생각하면 이들의 음악에 종교색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 노래들이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가 않는다. 음악과 종교를 향한 이들의 열정이 닮아 있어서일까. 어쩌면 이들이 노래하던 사랑과 음악과 종교란,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이 나올 만큼 순진한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닮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록곡들 중 ‘그대 떠난 뒤’는 통칭 ‘발라드’ 장르에서 보이는 빛과 소금의 출중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노래다. 이 앨범 이후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등으로 십수년 동안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바로 그 감성 얘기다. ‘난 아름다운 노래와 작은 시로/ 이 세상 끝까지 노래하리’(‘내겐 노래 있어’)라던 이들의 소박한 바람은 이미 이 앨범에서 이렇듯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상태였다.

<김윤하 | 웹진 가슴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