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85위 허클베리 핀 ‘올랭피오의 별’[한국명반]85위 허클베리 핀 ‘올랭피오의 별’

Posted at 2010. 5. 30. 01:00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6-26 17:40

ㆍ예술성 사수한 ‘장인의 사운드’

1998년 기타와 보컬을 맡은 이기용을 주축으로 첫번째 앨범 ‘18일의 수요일’을 내놓은 밴드 허클베리 핀은 당시 펑크의 즉자성이 지배하던 초기의 인디 신에 음악적 진중함과 진정성을 채워준 의미있는 팀이었다. 기형도의 시를 읽는 듯 음울하면서도 은유적인 노랫말은 대중음악이 간직해야 할 예술성을 담보하는 패기 있는 단편 시였으며, 응집된 분노를 터트리는 듯 쓸쓸하게 읊조리며 폭발하는 음악 역시 주류의 정서와는 다른 지점에서 고뇌하는 젊은 예술가의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상적이었던 첫번째 앨범 이후 두번째 앨범 ‘나를 닮은 사내’에서 더욱 물이 오른 이들의 역량은 허클베리 핀의 대표적인 싱글 ‘사막’에서 단번에 확인된다. 허클베리 핀 특유의 기타 리프 인트로와 바이올린이 빚어내는 비극적 정조 위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는 단호한 패배의식은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반영한다. 이 곡은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 챠우’ 등과 함께 한국 인디 신을 대표하는 싱글이 됐다.

앨범 내내 일관된 경향을 유지함으로써 평자에 따라 최고작이 엇갈릴 정도로 고른 완성도를 보이는 허클베리 핀의 앨범 가운데 2004년에 발표한 3집 ‘올랭피오의 별’은 지난한 재녹음과 믹싱을 거친 앨범답게 가장 정제되고 밀도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늘 허클베리 핀의 앨범을 채우는 커버의 노란 색처럼 심연을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지배하는 3집은 전작들처럼 강한 비극성의 노랫말은 없지만 허클베리 핀다운 강렬함이 살아 있는 가운데 더욱 서정적인 음악들로 채워졌다. 시종일관 힘이 넘치는 ‘I Know’, 전작의 정서를 잇고 있는 ‘K’ ‘자폐’ 등도 인상적이지만 어쿠스틱한 기타 인트로를 선보이는 ‘Time’, 바이올린 연주가 서정적으로 휘감기는 ‘연’, 나지막한 이기용의 보컬로 채워지는 ‘Hey Come’, 아름다운 아르페지오가 돋보이는 ‘올랭피오의 별’ 등이야말로 변화된 3집의 경향을 대변하는 곡이었다. 포크적인 감성에 경도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이런 변화는 결국 이기용의 개인 프로젝트 ‘Swallow’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한편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이는 ‘불안한 영혼’은 단아함과 강렬함을 교차시키며 직조한 뒤 원초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이소영의 보컬을 빌려 비극적 정서를 터뜨림으로써 허클베리 핀의 음악적 계보를 계승함과 동시에 이들의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앨범의 가장 대표적인 곡이라 할 만했다.

이처럼 앨범에 담긴 한 곡도 허투로 만들지 않는 공과 진지하고 지적인 시선은 허클베리 핀을 한국의 대표적인 인디밴드로 자리매김했으며 나아가 이기용을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창작자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그저 가볍게 소비되며 BGM으로만 기능하는 작금의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허클베리 핀은 한국 대중음악의 예술성을 고투(苦鬪)하며 사수하는 장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앨범과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통해 이기용은 2005년 한국 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은 바 있다. 드물게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2장의 앨범을 올린 것도 이러한 이들의 노고에 대한 소박한 찬사이며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묵묵한 격려 그 자체이다.

<서정민갑 |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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