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86위 이승열 ‘이날, 이때, 이즈음에…’[한국명반]86위 이승열 ‘이날, 이때, 이즈음에…’

Posted at 2010. 5. 30. 01:02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6-26 17:40

ㆍ굵은 선 은은한 음각의 록 보컬

이승열은 대중과 마니아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묘한 아티스트다. 하지만 이 경계선은 위태한 임계에 걸쳐 있기보다는 온전히 제자리에 안착한 자족(自足)의 영역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이는 그의 콘서트를 한 번이라도 가보면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그는 목소리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가객(歌客) 중의 하나다.

솔직히 음반을 통해 드러난 이승열의 송라이터적 능력을 ‘대단히 뛰어나다’라고 평하기는 힘들다. 몇몇 곡에서는 약간의 흡수력 부족이 드러나기도 하고, 치고 나가야 할 부분에서는 종종 망설이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이 단점의 공백들을 목소리의 밀도만으로 채워나갈 줄 아는 그는 앨범을 통해 ‘유앤미 블루’(U&Me Blue)의 잔향을 훌훌 털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진정 매력적인 조각상을 세웠다.

작품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이승열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선이 굵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특성이 위압적인 마초성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이승열의 목소리는 또한 부드럽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자기 세계를 밖으로 밀쳐내는 동시에 타인의 세계를 내부로 흡수한다.

그 안과 밖의 동시 공재 속에서 이승열의 목소리는 자연스러운 감동을 뽑아 올린다. 수록곡 중 김래원, 임수정 주연의 영화 ‘…ing’와 대작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에 각각 삽입된 ‘기다림’ ‘비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목소리의 특수성이 강조되었기에 앨범에서 표현되고 있는 그의 음악적 기세는 남다르다. 동시대의 록, 더 나아가 록의 본질 자체가 치솟는 양각의 돋을새김을 지향하는 데 반해 그는 은은한 음각 쪽으로 경사되어 듣는 이들을 끌어당긴다. 물론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아 당시 화제를 뿌린 비트 위주의 강성(剛性) 싱글 ‘Secret’나 상대적으로 코러스를 강조한 파워 발라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이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절정부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중성에의 근착(近着)이 상업성으로 변질되어 자신의 예술적 순수를 해칠지 모른다는 본능적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점들이 음반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쿨한 취향을 내세우는 스타일 과부하의 시대에 이승열은 고집스럽게도 예술의 본질과 진실을 캐려 한다. 이렇듯 전통적인 예술가상(像)으로의 역류(逆流)를 꿈꾸는 그의 목소리는 그 힘 있음과 선 굵음을 통해 멀리 뻗어나가서 이른바 삶의 진정성이라고 할 만한 것에 당도한다. 그때 이승열의 목소리는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열어젖히는데, 대부분의 팬들이 그의 가창력에 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핫’한 아티스트다.

살아 있는 인간의 목소리에는 제 각각의 생명의 지문이 찍혀 있다. 그리고 이것이 관능이라는 이름의 동선으로 표출된다고 한다면, 2000년대 이후 이 앨범만큼 훌륭한 사례는 없다. 대중가요의 음악적 하중은 악기에 있지 않다. 그것의 핵심은 바로 보컬에 있다. 이승열의 데뷔작은 이 명제가 참임을 잘 말해주는, 목소리의 관능이 퍼올린 쾌거다.

<배순탁 | 웹진 IZM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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