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82위 한대수 ‘무한대’[한국명반]82위 한대수 ‘무한대’

Posted at 2010. 5. 30. 00:56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6-12 17:28

ㆍ‘포크 대부’ 14년만에 돌아오다

음악사적으로 보면, 1968년 한대수 귀국 이래 한국 대중음악신에는 근본적인 두 가지 개념이 대두됐다. 첫 번째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이다. 대중음악에서 진정성을 가진 ‘창작’의 중요성을 인식시킨 것이다. 싱어송라이터의 중요성은 단지 가수 스스로 자기 노래를 만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뮤지션이 뮤직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진정성을 가진 양질의 작품(앨범)을 생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론’이라는 데 있다. 두 번째는 ‘모던포크’의 도입이다.

히피문화가 절정이던 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한대수는 당시의 음악적 트렌드를 직수입해 자신의 ‘창작 재료’로 활용했다. 당시 대개 뮤지션들은 음악적인 트렌드는 해외의 것을 쫓지만 그 핵심에 ‘창작적인 마인드’가 부족했다. 이에 반해 한대수의 음악활동은 혁신적이었다. 60년대 말에도 트윈폴리오와 같은 통기타그룹이 있었지만 ‘번안곡’을 부르는 수준이었고, 저작권 협의 없이 무단으로 타인의 노래를 부르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가수 스스로 창작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음악사적으로 한대수는 단지 ‘한국 모던포크의 대부’가 아니라 신중현과 함께 ‘한국 음악창작자 역사의 시작’으로 자리매김해야 마땅하다.

그런 한대수였지만 75년 2집 ‘고무신’ 이후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음악활동을 할 수 없어 미국 뉴욕으로 가고 만다. 그리고 장장 14년 뒤, 정치적인 해빙기였던 89년에 한국으로 잠시 돌아와 만든 앨범이 바로 3집 ‘무한대’다.

일반적으로 뮤지션은 1년만 활동을 중단해도 음악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곤 한다. 또한 마흔 살이 넘으면 시대적인 감각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족적 음악에 머물곤 한다. 이런 점에서 한대수의 ‘무한대’는 놀랍다. 오랜 세월 음악계를 떠나있었음에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오히려 ‘One Day’ 같은 곡에서의 ‘멜로디 감각’은 빛을 발한다. 또 손무현(기타), 김민기(드럼), 김영진(베이스)이라는 미완의 대가들을 세션에 참여시켜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다른 방향성의 록 세션을 보여줬다. 한대수가 직접 진두지휘해 구성한 세션은 일반적으로 획일화된 포맷의 연주를 들려주었던 국내 세션과 차별됐다.

이 음반에 담겨진 ‘하루아침’ ‘마지막 꿈’ ‘고무신’ ‘Till That Day’ ‘Widow Theme’은 80년대 느낌에 어울리는 ‘포크록’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원래 데뷔 앨범(1974) 이전에 이미 만들어놓은 곡들이었고, 예전에는 혼자 통기타로 연주했던 노래들이다. 이 음반은 그가 첫 번째 아내와 헤어진 후, 우울함을 잊고 무엇인가에 몰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70년대 초반 국내 여건상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록 세션’으로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을 실현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70년대 초반의 국내 레코딩·세션 여건이 그가 그리는 ‘음악적인 구도’를 구현해 줄 수 있었다면, 그는 포크뮤지션이 아니라 ‘록뮤지션’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음악사적으로 평가하면 그의 데뷔 앨범을 첫 머리에 거론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비평적인 측면에서 한대수의 최고작은 본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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