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81위 가리온 ‘Garion’[한국명반]81위 가리온 ‘Garion’

Posted at 2010. 5. 30. 00:55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6-12 17:28

ㆍ한국적 감성으로 보듬은 힙합

1990년대 초·중반, 미국 내 흑인들의 삶의 방식으로 대변되던 힙합문화는 국내에 음악·외형적 측면만 이식됐다.

그러나 가리온이라는 이름과 함께 비로소 우리의 힙합 신도 제대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클럽 마스터플랜을 기점으로 한국 힙합의 시작을 알렸던 가리온은 한국 힙합 신을 통틀어 가장 긴 역사와 뛰어난 랩스킬을 지닌 그룹으로 일컬어진다. 그런 이들의 첫 번째 앨범 ‘Garion’은 팀 결성 후 한참이 지난 2004년이 돼서야 우여곡절 끝에 발표됐다. 한국 힙합 역사상 미국이 낳은 힙합음악을 한국적 감성으로 보듬어 안은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이들이 연출하는 ‘한국적인’ 힙합은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 것에 대한 다소 맹목적인 집착에서 음악인들이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를 재현하지 않는다. 앨범에 수록된 하나하나의 음원들이 힙합의 고향인 뉴욕까지 날아가 미국 본토의 기운을 잔뜩 흡수하고 왔으면서도 한국적인 향이 느껴지는 것은 고집과 절충의 완벽한 조화 덕분이다.

프로듀싱을 맡은 제이유는 묵직한 드러밍을 통해 미국의 이스트코스트 힙합이 내포한 날 것의 느낌을 연출하면서도 우리의 다양한 옛 음악들에서 따온 소스를 버무리며 양국의 정서를 기가 막히게 조합했다. 여기에 불세출의 래퍼 메타와 나찰의 한국어 랩에 대한 고집스러운 사랑이 빚어낸 라이밍(rhyming)이 얹혀 ‘한국적 힙합’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 고전에서 샘플을 추출, 지극히 뉴욕적인 비트 속에 우려낸 앨범의 타이틀곡 ‘옛이야기’는 본작의 백미임과 동시에 앞서 언급한 ‘한국적 힙합’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을 필두로 몽환적인 비트와 은유적인 라이밍의 진수를 선사하는 ‘뿌리 깊은 나무’와 샘플링된 하프 선율이 귀를 간질이고 국내 최초로 스크래칭을 통한 후렴구를 연출한 ‘언더그라운드’, 역동적인 엇박자의 비트 위에 진정한 MC들의 자세에 대해 노래하는 ‘마르지 않는 펜’과 도입부의 센스 넘치는 보이스 샘플이 인상적인 풍자 해학송 ‘엉터리 학생’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막강 하이라이트 라인을 자랑한다.

지금의 세계 문화에서 ‘힙합’이란 단어는 마치 70년대 펑크와 히피처럼 단순한 음악의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마치 70~80년대의 록과 포크 음악처럼 힙합은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살피는 데 필수적인 키워드다. 그만큼 이제는 우리나라의 힙합 뮤지션들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음악적으로 성숙해왔다. 하지만 음악의 질이 높아졌음에도 10년이 넘는 한국 힙합의 역사 속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작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가리온의 본작에 대한 의미는 더욱 커진다.

국내 정서에 맞는 멜로디나 국악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이것이 한국힙합!”이라고 외치는 매체가 난무하는 이 웃지 못할 현실 속에서 도대체 어떤 것이 한국적 힙합인가에 대해 궁금한 이들이라면, 가리온의 첫 번째 앨범을 들어라. 거기에 해답이 있다.

<강일권 | 웹진 리드머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