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89위 패닉(Panic) ‘밑’[한국명반]89위 패닉(Panic) ‘밑’

Posted at 2010. 5. 30. 01:07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7-10 18:07
ㆍ괴기한 정서·날카로운 풍자 ‘충분한 기쁨’

패닉의 2집 ‘밑’은 ‘달팽이’ ‘왼손잡이’ 등 히트곡이 무성한 데뷔작 이후 1년 만에 발표된 작품으로 전작의 말랑말랑한 곡들을 기대한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움과 실망감을 동시에 안겨줬다. 하지만 이 음반은 일부 음악마니아와 음악평론가에게 새로운 음악을 듣는 기쁨을 충분히 전해줬다. 한국 대중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키치적인 표현들과 괴기스러운 정서, 비판적이고 냉혹한 노랫말은 이들의 음악이 읊조림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외침으로 진화한 것임을 보여준다. 음반 커버 역시 이 음반에 담긴 노래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광대와 저승사자, 날름거리는 혀와 충혈된 눈, 그리고 피에 젖은 부랑자 등 노래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들이 일러스트로 승화돼 음악의 정서가 예술적인 커버아트로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패닉의 새로운 실험에 참여한 지원군 역시 예사롭지 않다. 김효국을 비롯해 남궁연, 이태윤, 김동률, 유앤미블루(이승열, 방준석), 삐삐밴드(강기영, 박현준, 이윤정), 김세황(넥스트), 차은주(낯선사람들) 등이 기꺼이 ‘보조’ 스태프로 명단에 올렸다.

음반의 시작을 알리는 인트로 ‘냄새’는 파리와 벌레 일러스트, 풍자적 가사, 음산한 노래 분위기가 절묘하게 조화돼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 음반 수록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곡 ‘UFO’는 전작의 ‘왼손잡이’를 연상시키듯 부드러운 발라드풍에 풍자적인 가사를 안고 김효국, 이태윤, 유앤미블루, 남궁연 등 화려한 세션의 풍부한 사운드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이어지는 곡 ‘혀’는 훗날 김진표와 노바소닉에서 활동하는 김세황의 기타 애드리브와 이태윤의 감각적인 베이스 리듬, 그리고 차은주의 코러스가 잘 어우러졌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의 최고 명곡으로 꼽는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는 동화적 내용과 괴기스러움이 마치 팀 버튼의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음악 전체를 지휘하는 김동률과 꽹과리의 민영치를 비롯해 10여명의 세션이 참여한 곡이다.

공격적이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는 김진표의 ‘벌레’에 이르면서 보다 직설화법으로 변화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가 학원 풍자를 다소 부드럽게 비판했다면, 김진표의 ‘벌레’는 보다 신랄하게 한국의 교육에 음악적 질타를 한다. 더불어 김진표의 최고 문제작 ‘mama’는 읊조리는 듯한 랩이 일품으로 가사에 담긴 내용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불면증’은 삐삐밴드와 라이브 협연으로 이뤄진 곡으로 11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장난하듯이 부르는 이윤정의 목소리와 화려한 실력을 자랑하는 각 멤버들의 연주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들의 도전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작품은 대한민국 음악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 해 12월 대한민국 영상음악 대상을 수상했다. 1집과는 전혀 다른 대중들의 평가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이 공식적인 상은 또 다른 창작 활동의 기폭제로 의미 있는 상이 된다.

<류형규 | SK텔레콤 CI개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