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71위 패닉 ‘Panic’[한국명반]71위 패닉 ‘Panic’

Posted at 2010. 5. 30. 00:29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5-08 17:45
ㆍ뒤틀린 세상을 조소한 젊음

여기, 지칠 줄 모르고 뛰어가는 젊은 음악이 있다. 한창 좋을 때지…. 흐뭇하게 바라보다간 주춤한다. 어라, 그런데 뭔가 조금 다르다. 이상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팔과 다리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고, 입가에는 묘하게 기분 나쁜 웃음을 띠고 있었다. 패닉이 노래하는 젊음은 밝고 맑은 명랑만화 같은 젊음이 아니다. 자신만의 이론과 논리로 공격과 방어 겸용의 가시를 세우고, 뒤틀린 세상을 향해 더욱 뒤틀린 조소를 보이는 젊음이다. 달랐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 나타난 패닉과 패닉의 앨범은 분명 가요계의 돌연변이 같은 존재였다. 뜬금없이 뚝 떨어진 불분명한 출처도 그랬고, 명문대학생과 현직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멤버 구성도 그랬다. 댄스 음악에 대한 무조건적인 짝사랑이나 웰메이드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90년대 가요계에서의 위치 역시 독특했다. 저렴한 지하 녹음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운드나 때이른 세기말적인 분위기도 마찬가지. 모르긴 몰라도 ‘달팽이’의 히트로 각종 순위 프로그램에 불려 다니던 시절의 패닉은,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 꽤나 목구멍이 간질간질했을 것이다. ‘달팽이’도 패닉의 한 단면을 드러내주는 노래이긴 하지만, 사실 이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노래는 ‘아무도’였으니까. ‘아무도 필요 없으니 내 머리를 좀 잠궈 달라’며 새되게 외치던 바로 그 노래 말이다.

‘난 아무도 필요 없다’(‘아무도’)고 외치고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 왼손잡이’(‘왼손잡이’)라며 항변하던 이들의 목소리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와 ‘더…’에서 조금 더 섬뜩하게 완성된다.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며 몸집만 불려 나가는 살진 손가락들과 권위들에 정확히 손가락을 겨눈 것이다. 그런 작지만 힘 있는 외침이 유니크한 음악에 실렸다. 이들의 이런 목소리와 스타일은 이후에 나온 두 번째 앨범인 ‘밑’에서 더욱 몸이 불고 견고해지긴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신선한 매력은 이 첫 번째 앨범 안에 더욱 잘 살아있다. 그리고 그 편이 훨씬 자극적이며 인상적이다.

또 하나. 이 앨범 ‘Panic’에는 뾰족한 노래들만큼이나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순진한 러브송들이 공존한다. 이미 국민 애창곡이 된 ‘달팽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더없이 따뜻한 ‘기다리다’는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 중 하나다.

복고풍의 낭만이 물씬 풍기는 ‘너에게 독백’이나 ‘안녕’도 빼놓으면 서운하다. 죽음도 불사할 듯한 분노와 다시 내게 돌아오라는 애원을 함께 듣고 있노라면 새침함과 애교를 모두 가진 애인이라도 둔 듯 으쓱해진다. 스토리 텔러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이적의 괴이쩍은 세계관이 슬금슬금 드러나기 시작하는 노랫말들을 앨범 구석구석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설익은 싱싱한 젊음이 조금은 어석거리지만, 그래서 들을 때마다 매번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패닉이 눈을 돌렸던, 끊임없이 외치던 ‘그곳’의 ‘그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이 앨범은 언제까지나 그 시대에 응용 가능한 앨범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그 힘차게 살아 숨쉬는 생명력 그대로.

<김윤하 | 웹진 가슴 편집인>

1집 달팽이
장르/스타일
가요 > 발라드 , 가요 > 락/메탈
발매정보
1995.10 (대한민국) | 아세아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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