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68위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한국명반]68위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

Posted at 2010. 5. 30. 00:22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4-24 17:57
ㆍ불행했던 발매, 다시 뜨는 저력

이석원(v), 정대욱(g), 이상문(b), 김태윤(d)

이들의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는 앨범 타이틀만큼이나 신선한 내용물을 담아냈다. 대한민국에서 인디음악은 아직도 아마추어적 감성에 치기어린 젊음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외견상 인식의 전환이 필요 없는 적절한 대상이었다. 도를 넘어서지 않는 비꼼과 조소는 당시 매체가 관심을 보였던 새로운 문화가 지닌 가벼움과 독특함으로 대변됐고 충분히 수용이 가능했다. 동시에 손을 뻗으면 누구라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 첫 결과물은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처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수식을 얻었다.

재미있는 건 ‘언니네 이발관’이 한층 발전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후일담’을 발표했을 땐 주류 매체가 일제히 인디문화로부터 관심의 끈을 놓았고, 결과물 자체를 낯설어했다는 점이다. 한참 흥미 위주로 저열한 고정관념을 심고는 막상 구체화된 성과가 조성되려는 시점에서 뒤로 물러선 것이다. 그 와중에 ‘비둘기는 하늘의 쥐’가 그들이 내려놓은 정의에 묶여 있고, 그 반작용에 ‘후일담’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건 언니네 이발관으로선 불행이었다. 애초부터 인디음악을 비평적으로 조명한 매체 중 영향력을 지닌 경우가 전무하다시피했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1999년은 불운한 시기였고 당시 발표된 결과물들 또한 묻혀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언니네 이발관의 ‘후일담’이 서서히 지지를 받으며 동의를 얻어나갔지만 밴드는 이미 개점휴업 상태를 맞이한 뒤였다. 결국 최상의 작품을 완성시킨 구성원이 함께한 협연은 ‘A Tribute to 들국화’(2001)에 참여한 ‘솔직할 수 있도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후일담’에 대한 뒤늦은 반응이 밴드의 복귀작인 ‘꿈의 팝송’(2002)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걸 보면 결코 무의미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후일담’은 대체 어떤 결과물을 담아냈던 걸까. 흔히 명반이라 불리는 작품들 대부분은 역사적인 의미 부여를 획득했거나 압도적인 실험성 혹은 의심할 여지없는 완성도를 근거로 한다. 굳이 따지자면 가장 마지막 경우에 속하고, 아직도 밴드명에 반문할 사람이 많은 미약한 기반이 무색하리만치 모두가 바라마지 않을 결과물과 형식을 지닌 앨범이다. 음악적 성취라 불릴 만한 ‘어제 만난 슈팅스타’ ‘청승고백’이 싱글 기능을 우수하게 실행해줄 ‘유리’ ‘어떤 날’과 훌륭한 공존을 이룬다. 접속곡들을 활용한 매끄러운 진행은 절묘한 트랙 배치를 더해 더 이상의 유기적인 흐름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결론적으로 ‘후일담’은 기록적인 근거만으로 감탄을 강요하는 ‘문자상의 명반’과는 거리가 멀다. 설사 오디오와 가장 떨어진 장소에 진열하더라도 먼지가 쌓일 틈 없이 듣는 앨범이다. 그것이 보편적인 동의를 얻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놀랍다. 따라서 마치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악기를 가지고 뚝딱뚝딱 만든 음악처럼 다가왔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의 다음 발걸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 흔적에 앞으로 역사성마저 부여된다면 그건 바로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처음의 의미’보다 높은 수식일 것이다.

< 문정호 | 웹진 ‘가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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