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65위 DJ DOC ‘The Life... DOC Blues’[한국명반]65위 DJ DOC ‘The Life... DOC Blues’

Posted at 2010. 5. 30. 00:17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4-17 17:49
ㆍ허세를 벗어던진 ‘길거리’ 힙합

처음 이들이 ‘슈퍼맨의 비애’를 부르며 등장했을 때 훗날 이런 걸작을 만들어내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은 나이트클럽 DJ 출신들이 만든, TV용 랩 댄스 그룹이었을 뿐이다. 이건 ‘머피의 법칙’을 부를 때도, ‘여름이야기’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뮤지션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따라붙기 시작한 건 ‘삐걱삐걱’이라는 노래가 들어있는 4집 때부터였다. 그전까지 주류 댄스 작곡가 박근태와 윤일상 등의 곡을 받아 노래를 부르던 이들은 이 앨범부터 직접 곡 작업에 참여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DOC와 춤을’은 기존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삐걱삐걱’은 이들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힙합 비트에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담은 이 노래는 일찌감치 다음 앨범 방향을 제시했다.

5번째 앨범 ‘The Life... DOC Blues’가 나오기 전 이들은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었다.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 뉴스와 연예 프로그램에서 계속 모습을 드러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중들은 이제 이들을 뮤지션이라기보다 동네 ‘양아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앨범은 바로 그런 절박함의 기록이었다.

노래를 맡은 김창렬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앨범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남은 두 멤버, 이하늘과 정재용이 생각한 것은 바로 전 앨범에 있던 ‘삐걱삐걱’의 확장판이었다. 이들은 상당수의 곡을 자신들이 작업하며 이 앨범을 DJ DOC만의 힙합 앨범으로 만들었다. 클럽에서 활동하던 후배 힙합 뮤지션들을 앨범에 참여시켰고, 힙합의 방법론인 샘플링을 곡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랩에서도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재치 있는 라임들을 사용하며 꽤 괜찮은 MC임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치는 제대로 된 ‘거리의’ 음악을 들려줬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힙합 뮤지션들이 미국의 힙합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며 뜬구름 잡는 허세만을 얘기할 때 이들은 자신들이 거리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들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노래에 담았다. 공백기 동안 자신들의 생활을 노래한 첫 곡 ‘와신상담’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들리며, 욕설과 경찰 비하로 논란을 일으켰던 ‘L.I.E’와 ‘포졸이’ 역시 이들의 분노가 그대로 전달된다. ‘Run To You’와 ‘Boogie Night’는 기존 DOC 댄스 히트곡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리듬 자체를 더 감각적으로 발전시켰다. 실질적인 마지막 곡 ‘Alive’는 앨범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노래다. 이하늘이 애써 꾸미지 않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뭇 감동적이다.

이런 앨범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뮤지션의 자의식과 처해있는 상황, 창작력이 함께 최상에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DJ DOC는 더 이상 이런 앨범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스트리트 파이터’가 아닌, 자상한 애아빠와 각종 TV 프로그램의 유쾌한 출연자가 된 멤버들을 볼 때 이런 앨범을 기대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이런 앨범은 정말 ‘Spirit(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김학선 | 웹진 가슴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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