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63위 정태춘·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한국명반]63위 정태춘·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Posted at 2010. 5. 30. 00:15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4-10 17:49

ㆍ투쟁이 사라진 시대 쓸쓸한 관조

얼마 전 보게 된 쿠바 음악다큐멘터리에서 현지 힙합밴드인 ‘오요 콜로라요’의 인터뷰가 나왔다. 그들의 말. “우리는 사랑을 노래한다. 증오도 노래한다. 전쟁이나 평화도 마찬가지다. 노래는 이 시대에 대한 증언이자 사회비평이다. 우리는 시대의 역사를 음악으로 남기려 한다.” 잊고 있었던 노래의 기능에 대한 당연한 되새김이었다. 그리고 문득, 정태춘이 떠올랐다.

정태춘,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1992년 대한민국의 풍경을 음악적 리얼리즘으로 정밀하게 그려낸 앨범이다. 음유시인에서 현장시인이 됐던 그들이 투쟁의 거리가 사라진 90년대에도 음악의 사회적 기능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전작에 비해 가사의 살풍경이 다소 온화하게 바뀐 것이 투쟁의 시대 이후 민중가요의 생존법을 보여줬다. 노래가 시대의 기록이란 걸 2007년에 이 음반을 다시 들어보면서 새삼 느꼈다. 백선생(백기완), 백태웅, 김진주, 강요배…. ‘사람들’에서 흐르는 추억의 이름들이다. 지금은 흔적도 찾기 쉽지 않지만 그 당시 사회의 변혁을 고민했던 이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운동가들이었다. 주절주절 혼잣말하는 정태춘 창법의 쓸쓸함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앨범 표지에서도 느껴지듯, 셀프 타이틀곡인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혁명의 열정이 식은 90년대 삶의 풍경을 쓸쓸하게 관조한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가 그의 마음을 오롯이 담고 있다. ‘나 살던 고향은’은 6만엔에 한국처녀를 품는 일본인 ‘기생관광’의 풍경을 아프게 담고 있다. 그는 라이브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X돼 부렀네”라는 한탄의 가사로 바꿨다.

또한 행진곡과 발라드의 변주였던 80년대 민중가요의 음악언어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던 편곡과 국악기 구성도 높이 평가 받는다. ‘LA스케치’에서는 리드미컬한 사설조의 보컬에 장구를 퍼커션으로 사용하여 ‘디아스포라 사운드’를 만든다. ‘나 살던 고향은’에서는 아코디언과 엔카풍의 편곡으로 일본인을, 그리고 우리를 조롱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모든 음악적 성분은 울림 있는 정태춘과 박은옥의 목소리를 통해 완전한 모습으로 쏘아져 가슴에 꽂힌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음반의 출생 자체가 시대의 모순에 대한 싸움이었다. 정태춘, 박은옥은 사전심의에 반기를 들며 1990년 ‘아, 대한민국…’을 비합법 테이프로 발매, 유통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서태지 ‘시대유감’ 사태를 거쳐 사전심의제가 위헌 판정을 받으며 사망했다. 그를 지지해왔던 음악인들이 이를 축하하는 페스티벌 ‘자유’를 개최했고, 두 음반은 합법CD로 발매됐다. 주변의 풍경을 노래한다는 것만으로 가위질을 당했던 시대를 이들의 힘을 얻어 건너왔다는 것이 참 쉽게 잊혀졌다. 여전히 정태춘은 거리에 선다. 촛불 집회에도, 대추리 관련 시위에서도. 그리고 또 그의 분노를 일으킬 이슈가 있다면 확성기를 들고서라도 노래를 부를 사람. 정태춘은 시대를 사는 가수다.

〈 우승현 | 네이버 대중문화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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