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62위 장필순 ‘Soony6’[한국명반]62위 장필순 ‘Soony6’

Posted at 2010. 5. 30. 00:12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4-03 17:51
ㆍ눈물나게 하는 노장의 ‘귀거래사’

개성 있는 보컬리스트 정도로만 평가되었던 장필순은 1997년 자신의 5집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를 통해 드디어 만개(滿開)한다. 조동익의 섬세한 프로듀싱과 윤영배의 뛰어난 송 라이팅은 장필순 보컬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며 비로소 장필순을 아티스트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 다섯번째 앨범은 드디어 그가 노랫말과 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그의 뒤늦은 역작이다. 동시에 80년대 동아기획에서 분가해 조용히 변방을 지키고 있던 하나뮤직의 거대한 실체를 증명하는 명반이기도 했다.

자신의 대표작이 되어도 좋을 만큼 완성도 높은 앨범을 내놓고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2년 나온 장필순의 여섯번째 앨범 ‘Soony6’은 관점에 따라서는 5집에 비견될 수 있는 걸작이었다. 여전히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은 조동익은 앨범의 전곡을 편곡했을 뿐만 아니라 기타, 베이스, 키보드를 직접 연주하고 나머지 악기를 모두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뽑아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실로 1인 프로듀싱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고집스러우며 정교하고 치밀한 조동익의 지휘 아래서 장필순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대체로 포크의 자장 안에서 순하게 머물러 있던 지난 앨범들과는 달리 전자음 속에서 섞이고 증폭된 그의 목소리는 낯설고 이질적이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사실 그동안 하나뮤직이 선보였던 포크라는 틀을 깨고 세련된 모던 록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주는 이 앨범은 까면 깔수록 계속 새로운 실체를 만나게 된다. 사소한 일상의 읊조림 같은 노랫말 위로 바짝 마른 장필순의 보컬과 전자음의 연주가 꼼꼼하게 배치됐다. 특히 소음마저 한 치의 틈을 보이지 않는 ‘고백’의 숨 막히는 완성도와 ‘10년이 된 지금’이나 ‘동창’ 등의 가슴 뭉클한 편안함이 교차되는 앨범은 자연성과 기계성을 뒤섞어 장필순 음악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과감하게 실험한다. 뿐만 아니라 윤영배의 송 라이팅이 여전하고 장필순의 창작력 역시 일취월장해 싱글 하나 하나가 모두 옹골차고 단단하다. 시종일관 눈물 흘리며 듣게 된다.

이 앨범은 80년대 음악활동을 시작해 90년대를 피투성이로 통과하면서도 결코 자존을 잃지 않은 노장 음악인들의 자기 증명이었으며 활력을 잃은 2000년대 초반 한국 대중음악에 벼락같이 내려친 축복이기도 했다. 이 정도의 품격과 완성도를 갖춘 음악이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면 이 앨범은 실상 기적과도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10대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버린 음악 시장에서 이 앨범은 철저히 외면 당했고 그 결과 하나뮤직은 서울에서의 모든 음악활동을 접고 제주도로 낙향을 떠나버렸다. 음악인이 음악으로 말하고 음악으로 연명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후로 5년이 지나도록 새 앨범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만든 현실의 서글픈 결과일 뿐이다.

〈 서정민갑 | 대중음악의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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