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59위 못(MOT) 비선형[한국명반]59위 못(MOT) 비선형

Posted at 2010. 5. 30. 00:00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3-27 17:29

ㆍ‘인디냄새’가 전혀 나지않는 인디음악

이언 (v), Z.EE.(g)

음악은 시대를 닮는다. ‘러브 앤 피스’를 목청 높이던 시대에도, 목숨보다 자유를 달라고 외치던 시대에도 음악은 각자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은 채 존재해 왔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음악 역시 21세기를 닮아있을 것이다. 못의 음악이 그렇다. 무엇을 해도 불안하고, 태생부터 지쳐있는 우리들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한 불편함을 담고 있다. 그것도 매우 완벽한 형태로.

2004년 못(MOT)의 등장은 놀라웠다. 듣는 사람들의 입마다 ‘이거 누가 만든 거야?’라는 반응이 앵무새처럼 똑같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런 반응들은 이 앨범의 매우 ‘잘’ 만들어진 만듦새에 대한 감탄으로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 앨범을 내는 밴드인 것은 분명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은 앨범의 완성도와 감정의 낙폭을 조절하는 노련한 품새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비선형’은 지하 연습실 곰팡이나 땀 냄새보다는 포르말린 액이나, 오래된 도서관 책 냄새가 어울렸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악기 가방을 둘러메고 홍대 거리를 헤매는 청춘들보다는, 그 모든 것들을 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면밀하고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관찰자의 면모를 풍긴다. 인디에 뿌리를 두고 탄생한 음악이면서도 ‘인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앨범이 인디 팬들은 물론 일반적인 대중음악 팬들까지 흡수할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

그렇다고 ‘비선형’이 그렇게 친절한가? 물론 그럴 리 없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음습한 늪지대를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다. 록과 트립합, 재즈를 교배시킨 질과 양이 풍성한 사운드는, 하나같이 ‘비선형적’인 앨범의 소리 하나하나와 함께 리스너를 쥐락펴락한다. Z.EE.의 기타는 노래마다 옷을 바꾸어가며 매번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스테이지를 장악한다. 노랫말 역시 그런 이들의 음악을 꼭 닮았다. 분명히 수십, 수백 번 걸러졌을 단어들이 복받치는 감정에 어쩔 줄 모른다. 수줍은 추억의 회상 끝에 ‘추억은 투명한 유리처럼 깨지겠지/ 유리는 날카롭게 너와 나를 베겠지/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라며 황급히 표정을 바꾸는 ‘Cold blood’는 가벼운 시작이다.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날개’), ‘늘 깨어 있고만 싶어/ 모든 중력을 거슬러/ 날 더 괴롭히고 싶어’(‘카페인’). 이 모든 감정의 밑바닥엔 ‘내 곁에 왜 당신이 없나요’(‘현기증’)라는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음울하게 떨리는 이언의 보컬은 이 조합에 더없이 적역이다.

못의 ‘비선형’은 상실에 의한 온갖 불안이 완벽히 조화된 세계다. 그에 따른 자학과 체념, 집착, 상실에 의한 슬픔, 비웃음들이 한 덩이로 뭉쳐 비선형적인 선율을 타고 우리의 귀를 잡아먹을 듯 넘실댄다. 기준 안에서 제 멋대로 비틀려져 있는 세기말의 기운이, 이 시대의 지난한 아픔이 재능 있고 꼼꼼한 음악감독의 손 위에서 놀아난다. 좋은 앨범이다.

〈 김윤하 | 웹진 가슴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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