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72위 V.A ‘우리 노래 전시회’[한국명반]72위 V.A ‘우리 노래 전시회’

Posted at 2010. 5. 30. 00:31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5-08 17:45
ㆍ훗날 보석이 된 풋풋한 목소리

누가 뭐래도 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가왕 조용필이 있었으며, 그 뒤로 전영록, 송골매, 김수철이 있었다. 이정선과 신촌블루스, 그리고 김현식 등의 신촌파가 있었고, 다섯손가락 같은 풋풋한 대학생 밴드도 있었다. 이문세, 유재하같이 한국 팝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팝 뮤지션도 있었다. 정태춘이 노래의 가치를 새로 세운 것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합법적인 민중음악이 등장한 것도 모두 80년대였다.

하지만 저 많은 뮤지션들의 리스트 사이에서 이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의 명단이 빠져있다면 그건 80년대 음악을 절반밖에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동아기획으로 대표되는 그 쟁쟁한 이름들 말이다. 들국화와 어떤날, 그리고 시인과 촌장까지. 스타일리스트 이광조와 따로또같이 출신의 강인원은 또 어떠한가. 최성원의 지휘 아래 만들어진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컴필레이션 가치로는 으뜸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이 앨범에 참여한 이들이 얼마 후 한국 대중음악사에 가장 빛나던 순간을 만들어내는 주인공들이 됐다는 것이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기 전의 풋풋한 모습들도 발견할 수 있다.

포효하는 보컬 대신 보다 말갛던 전인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정규 앨범보다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시인과 촌장의 ‘비둘기에게’, 비록 이병우는 없었지만 어떤날의 등장을 처음 알린 ‘너무 아쉬워 하지마’까지 풋풋한 노래들은 훗날 모두 보석이 되는 노래들의 원석과 같은 것이었다. 또한 들국화의 노래로 나중에 더 유명해지는 ‘매일 그대와’와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제발’ 같은 곡들 역시 들국화의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이런 뛰어난 컴필레이션 앨범의 중심에는 최성원이 있었다. 음악감독으로서의 최성원은 모두 여덟 곡의 노래들 가운데 다섯 곡을 만들며 컴필레이션 앨범답지 않은 일관된 정서를 제공했다. 들국화로 유명해지기 전의 전인권이나 레코딩 경험이 없던 어떤날 같은 새 얼굴들을 전면에 배치시키며 ‘발굴’이라는 기획자로서의 의무에도 충실했다. ‘그댄 왠지 달라요’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훗날 작사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박주연의 발굴 역시 탁월했다.

반복해서 하는 얘기지만, 이 앨범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여기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이후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확인해보면 안다. 최성원과 전인권은 들국화를 결성하여 전설이 됐다. 어떤날은 두 장의 앨범을 통해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시인과 촌장은 ‘푸른 돛’과 ‘숲’이라는 걸작을 연이어 만들어냈다. 이광조 역시 ‘사랑을 잃어버린 나’라는 훌륭한 팝 앨범을 발표했으며, 박주연은 작사가로서 1990년대 초중반을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좋은 곡의 모음과 새로운 뮤지션의 발굴, 그리고 훗날 미치게 될 영향력까지. 이 앨범은 컴필레이션 앨범이 갖고 있어야 할 미덕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런 앨범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명반이라 부른다.

<김학선 | 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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