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12위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 했었지’[한국명반]12위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 했었지’

Posted at 2010. 5. 21. 02:05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잊혀진 한국 흑인음악의 원류-

“사랑과 평화요? 잘하죠.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게 멋진 보컬과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지 않아요?” 이 정도다. 지금의 대중들에게 사랑과 평화라는 그룹은 이 정도인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끔 윤도현이 진행하는 음악프로에 나오고 익숙한 노래들을 부르면 “아, 그 노래?” 할 정도는 되고, 나이 지긋하게 들어 보이는 보컬 이철호의 모습에서 노장의 저력을 실감하고…. 그냥 이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평화는 ‘그 정도’의 그룹이 아니다. 무슨 경로우대증이나 발급 받으면 만족할 만한 정도의 ‘포스’를 지닌 팀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상을 바꿔보자. 비틀스로, 스티비 원더로, 에어로스미스로, 유투로. 누가 그들을 “그냥 잘하죠”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음악 좀 안다는 사람일수록 “요새 것이 음악이기나 해? 적어도 스티비 원더는 30년 전에 그것보다도 훨씬 멋진 것들을 다 만들어놨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사랑과 평화는 1970년대 말 마약사건 이후 하는 수 없이 주류가요계에 백기투항을 선언한(가요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 될) 거의 모든 음악인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지조를 지키며 살아남은 팀이다. 단순히 그들이 ‘타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뛰어난 작업들을 남겼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묻혔다. 잊혀졌다. 산울림은 조명되었고 신중현은 복권되었지만 사랑과 평화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의 이철호가 김창완 만큼 대중적인 스타가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신중현 만큼 평론가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일부 평론가들에 의해 록 위주로 재정립된 한국 대중음악의 계보도에서 흑인음악인 훵크와 소울을 구사했던 이들이 부여받을 방 한칸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78년의 사랑과 평화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가요 사상 최상의 결과물 중 하나를 분명 만들어냈다.

믿기 어려운가? 익숙한 A면 대신 B면부터 귀를 기울여보자. 훵크와 소울, 심지어는 재즈의 매력을 물씬 풍겨대는 ‘달빛’과 ‘저바람’은 이제는 사실상 맥이 끊긴 한국형 흑인음악의 원류이다. 너무도 충만한 리듬감에 절묘하게 어긋났다 다시금 맞아떨어지는 연주의 질은 쉽게 흘려버릴 수 없다. 다양한 이펙터와 디스토션 위를 오가며 현란하게 재주를 부리는 최이철의 경이로운 기타, 탄탄한 배킹과 꽉 짜여진 인터플레이를 보여주는 사보(SARVO)의 베이스와 김명곤, 이근수의 키보드 역시 대단하다. 진지하되 심각하지 않다. 진국이지만 텁텁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평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앨범을 수놓은 그 어떤 이름도 쉽게 지나칠 수 없지만 이 앨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장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김이환, 이경애, 이원호 등 무려 세 가지의 가명을 쓰며 앨범의 주요곡을 작곡한 웃지 못할 사건의 주인공이 된 이장희. 그는 진정 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이 배출한 가장 스타일리시한 음악가였음을 이 앨범은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흑인 음악을 하고 있는 그 어떤 젊은 뮤지션들이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이철호와 박광수를 찾길 바란다. 그리고 잊혀진 한국 흑인음악의 원류를 더듬고 그 맥을 잇기 바란다. 그들이야말로 당신들이 숭배하고 떠받들어야 할 제임스 브라운이고 스티비 원더이다.

◇‘사랑과 평화’ 프로필
·결성 : 1978년
·구성원 : 이철호(보컬) 송기영(기타) 이승수(베이스) 홍현민(키보드) 정재욱(드럼)
·주요활동
-1970년대 중반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서울 나그네’가 전신
-1978년 당시 DJ로 활동하던 이장희의 도움으로 1집 ‘한동안 뜸했었지’ 발표
창단 멤버는 이남이(베이스), 이철호(보컬), 최이철(기타, 보컬), 김명곤(키보드), 김태흥(드럼)
-1979년 2집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어요’ 발표
이남이 빠지고 송홍섭(베이스) 영입
-1983년 드러머 김태흥 교통사고로 사망
-1988년 3집 ‘사랑과 평화 VOL1’ 발표. ‘울고 싶어라’ 히트

사랑과 평화 2기. 최이철, 이남이 등 원년 멤버와 새로운 멤버 한정호(키보드), 최태일(베이스), 이병일(드럼) 등 보강
-1989년 4집 ‘샴푸의 요정’ 발표
이남이가 솔로로 나가고 박성식(키보드), 장기호(베이스) 영입
-1992년 5집 ‘못생겨도 좋아’ 발표
박성식과 장기호, 종교적 이유로 ‘빛과 소금’ 결성해 떠남
사랑과 평화 3기. 이승수(베이스) 안정현(키보드) 들어옴
-1995년 6집 ‘Acoustic Funky’ 발표
-1999년 최이철과 안정현, 미국으로 음악 공부하러 떠남
-2003년 7집 ‘Love & Peace: The Endless Legend’ 발표
-2006년 드러머 이병일 뇌졸중으로 사망
-2007년 8집 ‘Life & People’ 발표

〈김영대|웹진 음악취향Y 필자·선정기획|가슴네트워크〉

1집 한동안 뜸 했었지
타이틀곡
한동안 뜸했었지  
발매정보
1978 (대한민국) | 서라벌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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