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9위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한국명반]9위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Posted at 2010. 5. 21. 01:43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앨범의 시작과 동시에 시작되는 ‘노 캐리어’의 전자음과 디스토션이 잔뜩 걸린 사운드의 향연은, 델리 스파이스의 데뷔작을 ‘차우차우’만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이제는 살짝만 물어도 잇자국이 푹 파일 정도의 말랑말랑함으로 변해버린 ‘모던 록’이라는 단어의 이미지와 이 데뷔앨범은, 사실 출발선부터가 전혀 다르다. 우선 모던 록은 ‘그런’ 음악이 아니다. 따라서 달콤한 사랑의 시, 혹은 이별에 대한 성찰과 러브송 따위는 이 앨범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그 빈자리는 뒤틀린 냉소와 촘촘히 가시가 박힌 목소리의 차지다.

델리 스파이스가 “이 앨범으로 대한민국의 인디신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단순한 표현은 이 앨범의 설명으로 무언가 부족하다. 그보다도 이전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차원으로 청자들을 이끌어줬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고급화된 발라드와 댄스 음악 섭렵에 여념이 없던 대중가요판은 물론, 펑크와 하드코어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기 힘들던 홍대 바닥에서조차도 U2와 R.E.M을 운운하며 등장한 이들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에 다름아니었다. 이 위에 이 앨범을 세상에 내놓기 직전까지만 해도, 멤버들 모두 평범하게 컴퓨터 속에서나 뛰놀던 리스너일 뿐이었다는 사실까지 더해진다면, 역사가 될 준비는 모두 끝난다. 그 기초 위에, 우러러 마지않던 영·미권 형님 밴드들의 음악에 결코 뒤지지 않는 멜로디와 감성이 덧씌워진다.

낯설지만 청량한 멜로디들과 물기 어린 사운드가 귓가를 자극하고, 노래 하나 하나가 뿜어내는 리듬들이 온 몸의 감각을 건드린다. 조금은 위악적이지만 위트 있는 윤준호의 노래, 그리고 청순함과 독기가 공존하는 김민규의 노래가 끊임없이 교차편집되면서, 마치 ‘모던 록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한 스릴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한번 더 폭발하는 것은, 그동안 미처 분출구를 찾지 못했던 90년대 모던한 청춘들의 외침이다. 그 외침은 록 밴드 앨범에서는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는 노랫말에서 비롯한다. ‘차우차우’의 서브타이틀이기도 한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자. 아마도 이 노래는 평론가들에게 까칠한 한마디를 던지려 했던 이들 젊은 날의 정서와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랑 노래로서의 역할, 이 두가지에 영원히 충실할 것이다. 이런 능숙한 야누스의 두 얼굴은 이 앨범의 큰 매력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기쁨이 없는 거리’와 ‘사수자리’의 촉촉한 서정과 ‘누가’와 ‘저승 탐방기’ 등에 나타난 서늘한 냉소들이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 앨범에 녹아든다. 그런 노랫말들을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멜로디, 청량한 밴드 사운드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는 것은, 이제 두번만 더 말하면 백번도 채우고 남을 것이다.

만일 이 짜릿한 신선함이 ‘델리 스파이스’의 ‘첫 번째 앨범’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음악팬들이 속상할 일이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판에 록 음악이 살아있는 동안 이 앨범은, 자의든 타의든 그런 바람들의 이정표 역할을 계속해 나가게 될 것이다.

-90년대 모던 청춘들의 뜨거운 외침-

한국의 모던 록을 이야기할 때 영원히 빠지지 않을 이름 델리 스파이스. 1995년, PC통신에 올렸던 김민규(기타/보컬)의 밴드 구인 글에 단 한 사람, 윤준호(베이스/보컬)가 연락을 해왔다. 이 소박한 만남에 이들과 평소 알고 지내던 오인록(드럼)과 이승기(키보드)가 모이면서 2년 뒤인 1997년, 델리 스파이스의 싱싱한 데뷔 앨범 ‘Deli spice’가 태어난다. 이 앨범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대중과 평론가 모두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뜨거웠는데, 그런 성공 이후 두번째 앨범 ‘Welcome To The Delihouse’가 조심스레 발매된다.

첫번째 앨범에 비하면 다소 낯설 정도로 화려하고 경쾌했던 이 앨범은 드러머가 최재혁으로, 키보드 역시 양용준으로 교체되었던, 음악과는 반대로 밴드로서는 다사다난한 앨범이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세번째 앨범 ‘슬프지만 진실…’까지가 이들에게는 밴드 외적인 면에서의 고뇌가 많았던 시기였는데, 3집 발매 이후 소속사와의 결별, 키보디스트 양용준의 탈퇴라는 진통을 겪게 된다. 이후 델리 스파이스는 더 이상의 새 멤버를 들이지 않고 현재까지도 김민규, 윤준호, 최재혁의 3인조 체제를 유지하면서 성실한 밴드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2001년 발표되었던 네번째 앨범 ‘D’부터 5집 ‘Espresso’, 6집 ‘BomBom’으로 차근차근 디스코그래피를 쌓아가는 것은 물론, 다양한 인디 앨범들의 프로듀스,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 ‘스위트피(Sweetpea)’ 활동과 인디 레이블 ‘문라이즈(Moonrise)’ 설립, 윤준호와 최재혁, 키보디스트 고경천이 결성한 밴드 ‘오메가3’에 이르는 활발한 활동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음악 하는 ‘재미’를 찾은 당당한 현재진행형 밴드, 지금의 델리 스파이스다.

〈김윤하|웹진 가슴 편집인〉

1집 Deli spice
장르/스타일
가요 > 인디 , 락/메탈 > 한국 락/메탈
발매정보
1997.08 (대한민국) | 도레미미디어

앨범소개

Guitar, Vocal-김민규
Bass, Vocal-윤준호
Keyboards-이승기
Drum-오인록

90년대 한국대중음악계 얼터너티브 밴드 델리스파이스가 만들어낸 첫번째 모던락 앨범으로 총 11곡의 곡들로 채워져 있다.
통신상에서 접속불능을 의미하는 "노 캐리어"의 테크노풍의 리듬을 시작으로 해서 다소 냉소적인 가사와 편안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가면", 중국 토종견의 이름이자 이태리어로 안녕안녕이라는 제목의 "챠우챠우", 파격적인 기타음으로 지루한 일상을 표현한 "콘 후레이크",이밖에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 "귀향","누가" 등이 이 앨범의 진수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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