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14위 시인과 촌장 ‘푸른 돛’[한국명반]14위 시인과 촌장 ‘푸른 돛’

Posted at 2010. 5. 21. 02:26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시인과 촌장의 두 번째 앨범 ‘푸른 돛’은 어른들을 위한 동요다. 고민과 그리움이 함께 하며 섬세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1985년 발표된 들국화의 데뷔 앨범이 80년대 초반부터 발아했던 언더그라운드의 포효라면 1년 후 등장한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의 성찰이자 번뇌다. 사회와 직접적으로 맞닿으며 부대끼던 그 이전의 모던 포크와는 달리, 맞닿되 피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이 앨범은 담고 있다.

80년대라는 시기 못지 않게, 하덕규의 성장기도 상처투성이였다. 초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아버지의 사업실패를 겪었다. 고등학교 때는 여러 번 가출을 해서 고향인 설악산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미대에 입학한 건 몇 번의 좌절을 겪은 후였다. 그런 과정에서 그가 그리워한 것은 고향인 동해바다였다. 그 곳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은 그의 이상향이었다.

그는 미술 못지 않게 음악을 좋아했다. 중3때 손에 넣은 기타를 독학으로 익히고, 훗날 화실을 경영하며 틈틈이 작곡을 했다. 서영은의 단편 제목에서 따온 시인과 촌장을 결성하고 81년 첫 앨범을 냈다. 그러나 기획사의 횡포로 그의 본래 의도는 사라지고 상업적 결과만이 남았다. 하덕규는 음악산업계를 떠나려 했다. 현실에서 적응할 수 없어 예술로 피했지만 돈이 결부된 예술은 더 이상 그의 은신처가 아니었다. 설악산에 올라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때 만든 노래가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다. 그 무렵 교류하던 김민기, 김창완, 전인권 등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던 뮤지션들과의 만남이 그에게 계속 음악을 하게 했다. 84년 함춘호를 만나며 다시 시인과 촌장을 시작했다. 다음해 컴필레이션 ‘우리 노래 전시회 1집’에 수록한 ‘비둘기에게’가 라디오를 중심으로 사랑 받으며 86년 ‘푸른 돛’을 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산실이자, 유일한 해방구였던 동아기획을 통해서다. 모든 노래를 하덕규가 만들고 함춘호는 연주를 맡았다.

이 앨범을 낼 당시에도 하덕규는 행복하지 않았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위스키를 마셔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괴로움을, 하덕규는 직설적으로 내뱉지 않는다. 서정적 은유만으로, 노래한다. ‘푸른 돛’ ‘고양이에게’ ‘사랑일기’ ‘진달래’ 같은 동화 속 단어들의 제목은 그에 걸맞은 단어들로 이뤄진 가사와 함께 엮인다. 하덕규는 고해성사대에 선 소년처럼 파르라니 떨리는 목소리로 그 단아한 단어들을 노래한다. 스스로의 괴로움을 잊고자 애써 뽑아냈을 밝고 차분한 멜로디들은 함춘호의 기타 연주와 함께 서정성의 극치를 획득한다. 하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건 괴로움이다. 가사의 행간에는 지금은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그런 답답함은 결국 마지막 곡 ‘비둘기 안녕’에서 폭발하고야 만다. 노래의 중반부, 그는 그동안의 미성을 벗어던지고 일그러진 목소리로 “비둘기 안녕”이라 외친다. 비둘기는 이 앨범에서 가장 자주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존재다. 결국 그는, 앨범의 화자는 희망을 찾는 데, 구원 받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함춘호도 빛나는 기타 솔로로 그런 울분에 힘을 더한다. 흔히 ‘푸른 돛’과 시인과 촌장은 80년대 서정주의 포크의 대표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그러나 이 앨범의 가치는 그런 단순한 문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고양이’의 조바뀜 부분, ‘진달래’의 은근한 엘레지, 그리고 ‘비둘기 안녕’은 이 앨범을 은유와 억압과 해방의 서사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하다. 한 시대의 양지와 음지가 이 앨범에 묻어있다.

▶‘시인과 촌장’ 프로필
·결성 : 1981년
·구성원 : 하덕규(보컬)/함춘호(기타)
·주요활동
-1981년 1집 ‘시인과 촌장: 짝사랑/님타령’ 발매
-1986년 2집 ‘시인과 촌장: 푸른돛/사랑일기’ 발매
-1988년 3집 ‘숲’ 발매
-1991년 베스트 음반 ‘1981-1991 Best’ 발매
-1997년 베스트 음반 ‘Best’ 발매
-2000년 4집 ‘The Bridges’ 발매
-2001년 라이브 앨범 ‘12년 만의 만남(Live)’ 발매

〈김작가|음악평론가/선정 기획|가슴네트워크〉

2집 푸른 돛
장르/스타일
가요 > 발라드 , 가요 >
발매정보
1986.07.15 (대한민국) | 서라벌레코드

앨범소개

Lyrics,Composer-하덕규
Arrangement-시인과 촌장
Producer-김영
Engineer-윤문기
Acoustic Guitar-하덕규,함춘호
Electric Guitar-함춘호,이병우
Bass-조동익
Key.-한송연
Drum-김영석
Clarinet-이원재
Har.-하덕규
기존의 모던포크와는 전혀다른 라디오히트를 기록한 <사랑일기>와 <진달래>,<떠나가지마 비둘기>등 자연에 감정이입시킨 노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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