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92위 양희은 ‘1991’[한국명반]92위 양희은 ‘1991’

Posted at 2010. 5. 30. 01:23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7-17 17:56
ㆍ‘아침 이슬’ 넘어 포크 새 장 열다

양희은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것들은 민중가요, 포크, 찬송가 등 다양한 범위를 아우르고 있었다. 데뷔 20주년, 그녀의 나이 마흔에 맞춰 발표된 음반 ‘1991’은 중년에 갓 접어든 여가수의 넓은 시야와 젊은 작곡가의 재능이 성공적으로 작용한 화학 반응의 예시로 가장 적절한 작품이라 회자되고 있다. 예전처럼 단순히 맑은 것을 넘어 세월의 연륜마저 느껴지는 양희은의 덤덤한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이 앨범은 듣는 사람을 무척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게다가 이 앨범은 ‘어떤날’과 솔로 앨범에서-그리고 지금은 여러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탁월한 재능을 보인 이병우가 연주와 작곡, 그리고 편곡에 가세하면서 양희은의 능력치를 120%로 끌어올렸다.

앨범의 프로듀서로 역임된 제랄 벤자민(Jeral Benzamin)은 루이즈 본파(Luiz Bonfa)와 허비 만(Herbie Mann), 그리고 존 피차렐리(John Pizzarelli) 등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린 인물로 앨범 내부에 흐르는 편안한 감성은 비단 유학파인 이병우의 실적만은 아닌 셈이다. 이 앨범을 통해 비로소 양희은은 ‘아침 이슬’의 맑은 이미지 이외에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는 가수로 인식 됐으며 같은 시대를 걸어왔던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젊은 팬들까지 흡수하게 됐다.

앨범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병우는 당시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고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유학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이병우는 제랄 벤자민 이외에도 마이클 맥도널드(Michael MacOnanld)와 같은 외국인 스태프들을 섭외해 작업을 진행했는데, 디테일한 울림과 공간감을 비롯한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 최상의 퀄리티를 추출해 냈다. 물론 이병우의 연주와 노래를 불렀던 양희은의 역량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단순히 기타 한 대로 이끌어가는 앨범이지만 매우 풍부한 느낌을 가졌다.

양희은과 이병우가 함께 썼던 가사들 또한 무척 아름답다. 이것은 일상적이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곡 제목에서 짐작 가능하듯 대부분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곡 작업들이 이루어진 듯하다. 발매일 또한 9월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들었을 때 앨범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설명이 필요 없는 히트곡인 ‘사랑-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담담하게 아름다운 ‘그해 겨울‘ ‘11월 그 저녁에’,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는 ‘가을 아침’ ‘어린왕자’의 내용을 읊으며 마무리짓는 ‘잠들기 바로 전’ 등의 곡들은 한국 포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양희은의 확실한 재기에 방점을 찍었다.

당장 학비를 낼 수 없었을 정도의 가난한 젊은 날들과 두 번에 걸친 암수술을 통한 투병생활을 거친 양희은의 목소리는 이미 단순한 가사의 내용을 넘어 너무나 많은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40줄에 접어들 무렵인 당시 그녀는 우리에게 이 앨범을 통해 일상과 인생에 대한 차분한 미소를 넌지시 보내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는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유효하다. 쓸쓸하지만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리고 가끔은 아프다. 그래서 자꾸 뒤돌아보게 만든다.

<한상철 |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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