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94위 강산에 ‘나는 사춘기’[한국명반]94위 강산에 ‘나는 사춘기’

Posted at 2010. 5. 30. 01:26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7-24 18:16
ㆍ분단·반전… ‘의식있는 록커’가 되다

첫번째 앨범 ‘Vol. 0’을 발표하고 ‘…라구요’를 부르던 당시의 강산에는 로커였고, 자유인이었으며, 기인이었다. 그는 ‘…라구요’ ‘예럴랄라’ ‘할아버지와 수박’ 등의 노래들을 박청귀, 이근형, 강기영 등의 록 세션에 담아 부른 장발의 로커였으며, 하모니카와 함께 “풀냄새 참 흙냄새 참 오래간만이네”를 외치던 자유인이었고, 잘 다니던 한의대를 그만두고 백마 ‘화사랑’이란 곳에서 먹고 자며 노래하던 기인이었다. 이런 강산에의 독특한 행보는 한 TV 프로그램에까지 소개되며 독특한 로커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러나 그가 2집 앨범 ‘나는 사춘기’를 발표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많이 바뀌었다. 그는 여전히 로커였지만 두 번째 앨범에서는 사뭇 다른 이미지의 로커가 돼있었다. 본인의 경험과 자유로움에 대해서 노래하던 강산에는 이제 분단과 반전에 대해 노래하는 ‘의식있는’ 로커가 된 것이었다. 사실 그의 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은 1집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실향민이었던 부모의 이야기를 빌려 ‘…라구요’를 발표하였고, 금전만능주의에 대한 냉소를 담은 ‘돈’이란 곡을 발표했지만 심의에 걸려 연주곡으로만 발표했다. (이 곡은 2집 앨범에서 ‘문제’란 제목으로 온전히 다시 수록됐다.)

하지만 두 번째 앨범에서는 사회적 논의들을 더 확장하였고, 더 직설적으로 발언했다. ‘선’이란 노래를 통해 “맘속에 무겁고 새까맣게 의미 없는 선을 그었다/ 보이지 않는 바다 밑까지 그 선을 그어 버렸다/ 끝이 없는 하늘에 오르는 그 선을 그어버렸다”며 국가와 각 개인들 사이의 벽에 대해 노래했다. ‘더 이상 더는’을 통해서는 “언제나 가진 자의 논리로 완성되어지는 비극의 끝은 그저 흘러가는 역사의 의미일 뿐, 아이들의 비명에 눈이 아프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전쟁의 비참함을 이야기했다. 물론 앨범에는 이처럼 무거운 주제의 노래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아노 연주에 맞춰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는 ‘넌 할 수 있어’는 그해 겨울 수험생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내며 강산에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었고 ‘블랙커피’ ‘널 보고 있으면’ ‘우리는’ 등 소품 3연작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노래들이었다. 이 세 곡을 만들어낸 김정욱의 발견은 이 앨범의 또 다른 성과이기도 하다. 강산에는 이런 노래들을 모아 박청귀, 한상원, 김정욱에게 디렉팅을 맡겼는데 이는 그때까지 앨범을 총지휘할 수 없던 강산에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세 명의 디렉터들은 앨범의 편곡과 세션에 깊이 관여하며 자신들에게 잘 맞는 연주자들과 함께 더없이 정갈한 록 세션을 담아냈다.

강산에는 이 앨범을 통해 90년대를 대표하는 로커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식 있는 로커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는지 이후 앨범을 발표할수록 정형화된 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록 기타 대신 둔탁한 리듬이 강조되는 음악에 집중하기도 했다. 3집에서부터는 일본인 프로듀서 하치의 방향성을 많이 따랐고, 이후에도 하치의 음악적인 영향에 많이 경도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강산에가 온전히 록 음악만을 하던 때의, 정통적인 로커 강산에의 모습을 가장 잘 담아낸 그의 최고작이다.

<김학선 | 웹진 가슴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