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93위 이소라 ‘눈썹달’[한국명반]93위 이소라 ‘눈썹달’

Posted at 2010. 5. 30. 01:25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7-24 18:16

ㆍ타고난 보컬의 ‘습한 매력’ 발산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이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이보다 하수인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이는 인류와 세계평화를 노래하는 이들보다 하위 레벨인가. 우리는 어쩌면 싱어 송 라이터라면 그 결과물이 무엇이든 대단하다는 착각에 빠져있고, 한 사람의 희로애락보다는 커다란 대의를 위한 무언가가 더 대단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상을, 저 먼 허공을 사력을 다해 가리키다가 갑작스레 피부에 와 닿는, 심장의 가장 깊은 곳을 베어내는 듯한 저릿한 아픔에 흠칫 놀라는 건 왜일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그 누구보다 ‘진한 사랑’을 노래할 줄 아는 이소라는 타고난 보컬리스트다. 연인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투정부릴 때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뒷모습을 보인 이별에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고 담담히 말할 때에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내공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밝은 면을 비추고 있을 때보다는,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때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발한다. 같은 발라드라고 해도 이미 한참을 멀어져간 사랑의 흔적을 더듬던 ‘난 행복해’와 ‘제발’이 눈부셨다. 이소라 안의 어둠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세 번째 앨범 ‘슬픔과 분노에 관한’의 ‘피해의식’ ‘금지된’ 같은 곡들의 흡인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매력 포인트가 어두운 곳에 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녀는 아플수록 힘 있게 성장하고 성숙한다. 그리고 그 힘은 이글대는 태양보다는 날카롭게 은빛으로 빛나는 달을 닮았다. 그런 이소라의 여섯번째 앨범이 ‘눈썹달’이다.

이승환과 같은 전형적인 발라드 작곡가에서 이한철이나 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와 같은 인디 근방의 뮤지션들, 시나위의 신대철까지 한 앨범에 모을 수 있는 것은 저력이라면 저력이다. 한 곳에서 만나게 되면 되레 어색할 만큼 개성과 에너지가 넘치는 이들의 음악을 ‘눈썹달’에서 한 점으로 강하게 묶는 힘은 당연하지만 이소라다. 앨범 전체적으로 모든 곡들이 고른 매력을 안고 있지만 ‘별’에서 ‘세이렌’까지 이어지는 앨범 중후반부의 노래들은, 그녀의 목소리의 습한 매력을 가장 잘 뽑아낸 라인업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민규와 함께한 ‘별’에서의 텅 비어 오히려 가득 찬 매력이나 음울한 그루브와 이소라 특유의 비음이 절묘하게 만난 신대철의 ‘Fortune Teller’ 등 놓치면 후회할 만한 곡들의 향연이다. 사랑의 애절함에서 비열함까지 담긴 이소라의 노랫말들은 어떤가. 앨범에 귀 기울이는 동안 우리의 가슴에 자그마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정재형과 함께 작업한 곡 ‘세이렌’에는 노랫말이 없다. 5분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건 엷은 안개처럼 깔리는 연주와 이소라의 허밍뿐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한다. 사랑과 아픔, 회한과 좌절이 그녀의 목소리에 섞여 멜로디 위를 떠돈다. 그것이 바로 보컬리스트로서의 이소라가 가진 가장 순결한 힘이다. 이 아련한 앨범의 오롯한 주인공은 멜로디도, 연주도, 노랫말도 아닌 이소라, 그 자신이다. 이 앨범이 대중 음악사에 그리고 이소라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꼭 기억돼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다.

<김윤하 | 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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