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5위 산울림 ‘산울림 1집’[한국명반]5위 산울림 ‘산울림 1집’
Posted at 2010. 5. 21. 00:59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산울림의 데뷔앨범을 섹스 피스톨스의 그것과 연관시키는 평자들은 흔히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곤 한다. 두 앨범이 같은 해에 발매되었으며, 아마추어리즘을 바탕으로 주류 음악계를 뒤흔들어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같은 외적 조건의 유사성만으로는 이 앨범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측면을 왜곡시킬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이 앨범은, 정치적 이념은 말할 것도 없고, 미학적 이론으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산울림의 음악은 이데올로기 따위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아예 무관심하다. 특히, 이 데뷔작은 무엇보다 즐거움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록 앨범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의 인터뷰에서 김창완은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 동요앨범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서 함양이라는 음악의 원초적 기능에만 충실한 것이 동요다. 거기에는 전복적 사고나 이념적 가치와 같은 ‘불순물’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산울림의 데뷔 앨범은 록음악이 동요의 단순한 직선성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이다.
예술가적 자의식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와 순진한 열정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을 만들어낸 극히 보기 드문 사례였던 것이다. 수록곡들이 앨범을 제작하기 수년 전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는 사실은 그 증거 가운데 하나다. 그들의 벼락 같은 등장이 대마초 파동으로 쑥대밭이 된 음악계의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는 시대적 조건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굳이 서양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60년대 초반 미국의 개러지 록과 함께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비틀스의 정제된 록 사운드가 세상을 뒤덮기 직전,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연주된 로큰롤의 거친 순박함이 그것이다. 그 분방한 자유로움 속에서 혁신이 탄생한 것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이 앨범이 가져온 파격 또한 의식적으로 연출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동시대 가요의 통속적 감상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선율로 이루어진 곡들이 상당수임에도 이 앨범이 그들과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이유도 거기 있다. 보다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2집이 정형화의 대가를 치른 반면, 이 앨범의 발랄한 도발은 기존의 무엇에도 빚진 게 없는 만큼 완전히 신선했고 여전히 신선하다.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탈피한 노랫말(김창완은 1982년의 8집에 이르러서야 산울림의 노래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말했다), 동요를 반주하는 듯 또박거리는 오르간과 심하게 일그러진 퍼즈 톤 기타의 극적인 사운드 대비, 묵묵하게 전진하는 드럼과 굽이치며 꿈틀대는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그루브까지 이 앨범의 내용물은 그 전과 후를 통틀어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 그래서, 당대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던 ‘아니 벌써’도 그렇지만, ‘문 좀 열어줘’의 인트로와 노랫말은 오늘 발표된 신곡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공시성의 생생함으로 다가온다. 민요를 모티브로 한 가장 창조적인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청자(아리랑)’, 변형된 론도양식의 리프가 시종일관하는 기이한 사랑노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등도 그 못지않다.
산울림의 데뷔앨범은 구도자적 이미지와 혁명적 메시지로 포장된 록 음악 신화를 해체해버렸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점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그건 결코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늘의 록 음악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 모순적 논리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은석|음악평론가〉
1집 아니벌써
앨범소개
1970년대의 가요계는 트로트와 포크 일변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더욱이 유신정권의 억압적인 통치방식 아래에서 쏟아 부어야할 젊은이들의 감정과 패기는 계속 억눌려왔다. 그러던 와중에 아주 적절하게 대학가요제라는 것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물론 대학이라는 특권의식을 조장한다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 시대에 젊은이들의 숨통을 그나마 터주었다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제 1회 대학 가요제의 대상곡은 서울대 그룹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 곡이 산울림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계기를 얻게 한 곡이다. 입..
1970년대의 가요계는 트로트와 포크 일변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더욱이 유신정권의 억압적인 통치방식 아래에서 쏟아 부어야할 젊은이들의 감정과 패기는 계속 억눌려왔다. 그러던 와중에 아주 적절하게 대학가요제라는 것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물론 대학이라는 특권의식을 조장한다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 시대에 젊은이들의 숨통을 그나마 터주었다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제 1회 대학 가요제의 대상곡은 서울대 그룹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 곡이 산울림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계기를 얻게 한 곡이다. 입사시험 관계로 김창완이 빠지고 단지 곡만 김창훈의 것이기는 했지만 이들이 음악에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소중한 곡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1977년 산울림은 대망의 1집 앨범을 내게 된다.
앞에서 밝혔듯이 국내가요계는 트로트와 70년대 초반부터 이어온 적당한 포크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어떤 방법으로든 새로운 음악이 나와야 할 시기였고 또 나올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형제 그룹 '산울림'의 '새노래 모음집'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더욱이 이들은 싸이키델릭 음악이 전무하던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싸이키델릭과 비슷한 사운드를 창출해냈다.(당시 방송국의 라디오 국에서는 '아니 벌써'의 기타 음을 음반의 상태불량으로 오인하기도 하였다) 참신한 혁명이었던 이들의 앨범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한 리듬이지만 독창성이 돋보이는 '아니 벌써'로 첫 포문을 여는데 이 곡의 대히트는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 주었으며 기념음반으로 생각하며 한 장으로 끝내려던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다음으로 '문좀 열어 줘'와 함께 1집의 최고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아마 늦은 여름 이였을 꺼야'가 눈에 띈다. 감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나오는 김창완의 보컬과 반복되는 오르간의 연주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곡으로 간주부분에 이어지는 기타연주는 2집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다시 맥을 이으며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에 일조 한다.
뒤를 잇는 '문좀 열어 줘'는 산울림 사운드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곡으로 변화무쌍한 프로그레시브 락적인 곡 전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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