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3위 김민기-70년대 ‘청년다움’의 결정체[한국명반]3위 김민기-70년대 ‘청년다움’의 결정체

Posted at 2010. 5. 20. 05:17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1971년에 나온 김민기의 유일한 정규 앨범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이른바전설이란 명칭에 값할 많지 않은 음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 전설은, 이 음반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량 압수 수거되고 이후 초희귀본으로 고가에 거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민기 본인이 오랫동안 정치적 박해와 금지의 사슬에 묶인 채 금기의 시절을 살아야 했다는 사실에 기인한 바 크다.

그러나 이 음반의 가치는 그런 데에만 있지 않다. 이 음반은 당시까지 서구 모던 포크의 번안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의 이른바 통기타 가요가 한국 젊은이들의 정신과 감성을 표현하는 음악 양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음반이고, 스스로 작사 작곡하고 노래 부르는 싱어송라이터 시대의 도래를 알린 음반이며, 대중가요가 그저 그런 사랑과 이별, 눈물뿐 아니라 깊은 철학적 사색과 시대적 고민을 담는 예술적 산물일 수 있음을 보여준 음반이기도 한 까닭이다.

이 음반이 흔히 통기타 가요로 통칭 되는 70년대 초반 한국적 모던 포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음악적 색깔은 의외로 다양하고 폭넓다. 클래식 기타의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주조로 한친구’ ‘저 부는 바람’ ‘꽃 피우는 아이’ ‘그날등이 정갈한 통기타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면, 정성조 쿼텟의 반주로 녹음된아하 누가 그렇게’ ‘바람과 나’ ‘’ ‘종이연등은 재즈의 자유분방한 사운드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와 현악으로 연주된아침이슬은 다분히 클래식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이 음반은 단순소박한 통기타 사운드에 머물던 한국 포크음악을 음악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음반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

물론 이 음반의 사회사적 가치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음반이 나온 70년대 초가 어떤 시대였던가. 3선 개헌과 함께 한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당선되면서 극악한 군사 독재의 영구집권 체제가 예고되고 개발독재의 모순이 터져 나오면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었는가 하면, 이른바 퇴폐풍조를 추방한다며 젊은이들의 장발과 미니스커트까지 단속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당대의 젊은이들이 이 질식할 듯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불만을 느끼고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 새롭게 유입된 모던 포크와 록음악, 그리고 장발과 청바지 같은 히피 스타일이 그들의 욕망을 분출시키는 수단으로 채택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을 흔히 청년문화라 부르지만 단지 캠퍼스 통기타와 청바지, 장발뿐이었다면 청년문화란 명칭은 적절치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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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에 담긴 노래들, 그리고 이후 주로 양희은의 목소리로 표현된 김민기의 노래들은 이 새로운 사조에 하나의 짙은 자의식을 새겨 넣어 주었다. 단순하고 즉물적인 기존 대중가요 노래말과 달리 깊은 정신적 울림을 가진 그의 노래말은 당대의 젊은 대학생들이 사회와 현실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갈등을 대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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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가 없었다면, 이 음반이 없었다면, 70년대 초의 청년문화는 그저 하나의 소비적 유행사조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70년대 청년문화의청년다움을 완성시킨 음반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

〈김창남|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 모던 포크의전설’…메시지 시적 언어로 형상화

김민기는 처음부터 신화였고 지금까지도 신화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1971년에 발표된 그의 유일한 음반은 그 이듬해 전량 압수당해 폐기됐고, 모든 곡 자체가 금지곡이 되며 그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전설이 돼갔다. 69년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한 그는 도깨비 두 마리란 뜻의도비두란 듀오를 만들어 활동하였고, 주로 YMCA 청개구리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평소 김민기의 노래와 재능을 아껴오던 CBS의 김진성 PD는 그에게 독집 앨범의 취입을 권했고, 김진성 PD의 도움을 받아 하루만에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독집 앨범을 녹음하였다. 그리고 그 앨범은 한국 모던 포크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앨범이 되었다.

아침이슬친구같은 노래들을 나직한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에 맞춰 불렀다. 세션으로 참가한 정성조 쿼텟은 앨범에 클래시컬한 분위기를 입혔다. 무엇보다 김민기의 음악을 말함에 있어 가장 먼저 평가되어야 할 것은 그의 가사쓰기였다. 그는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선동적이지도 않았지만, 그의 가사는 그 안에 내포된 메시지를 시적 언어로 형상화시키며 새로운 가사쓰기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이후 정권의 공작에 막혀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진 그는 자신의 학교 후배들을 이끌고 메아리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제작에 큰 역할을 하였고, ‘공장의 불빛’ ‘개똥이같은 노래극을 제작하였다. 또한 90년대 들어서는지하철 1호선이라는 록 뮤지컬을 연출하며 한국 뮤지컬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현재 학전의 대표로서 창작 뮤지컬·오페라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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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


1집 김민기
발매정보
1971 (대한민국)

앨범소개

김민기가 1971년 발표한 유일한 LP 정규앨범으로 꾸미지 않은 담백함과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색갈이 문화적 예술성을 지닌다. 70년대 초 국내 포크음악을 대표하는 이 앨범의 역사적 가치와 희소가치만큼 마치 유물을 복원하듯 조심스럽게 디지털 리마스터하여 왜곡되지 않은 당시의 사운드를 CD로 담아 재 발매됨은 수집가들에게 반가운 일이며 가요계에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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