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1위 들국화 대중음악 100대 명반 ‘들국화 1집’[한국명반]1위 들국화 대중음악 100대 명반 ‘들국화 1집’

Posted at 2010. 5. 20. 04:36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그룹 들국화의 데뷔 음반(1985)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혔다.

경향신문은 문화기획·대중음악 전문매체인 ‘가슴네트워크’에 의뢰, 평론가·기자·방송PD·음반기획자 등 국내의 대중음악 전문가 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선정했다. 그 결과, 들국화 데뷔 음반이 1위에 올랐다. 이 음반은 총 207점을 획득했으며, 선정위원의 87%인 4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별도의 추천 음반 리스트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선정위원이 들국화의 데뷔음반을 ‘명반’으로 꼽은 셈이다.

선정위원장 박준흠씨(가슴네트워크 대표)는 들국화의 음악을 ‘80년대 새로운 음악의 시작’이라고 평했다. 그들의 데뷔음반을 시작으로 80년대 중·후반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현대 음악 마니아의 감성과도 동떨어지지 않으며, 서구 대중음악의 트렌드에서도 벗어나지 않는 ‘세련된’ 한국대중음악의 시작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2위는 유재하의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사랑하기 때문에’(87)였다. 41명의 선정위원으로부터 182점을 얻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작사·작곡·편곡을 모두 해낸 유재하야말로 한국 대중음악 사상 처음으로 ‘음악적 자주의 완전 실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3위는 71년 발표된 김민기의 유일한 독집 음반이다. 발매 직후 전량 압수돼 폐기됐고, 모든 곡이 금지된 이 음반에 대해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대중가요가 그저 그런 사랑과 이별, 눈물뿐 아니라 깊은 철학적 사색과 시대적 고민을 담는 예술적 산물일 수 있음을 보여준 음반”이라고 말했다.

김창완·창훈·창익 형제의 산울림 1, 2집은 5, 6위에 나란히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산울림은 4위, 11위를 차지한 어떤날의 음반과 함께 20위권 내에 2장의 앨범을 올린 밴드다.

90년대 음반으로 10위권에 든 것은 9위인 델리 스파이스 데뷔음반(97), 10위인 이상은의 ‘공무도하가’(95)였다. 90년대 ‘문화대통령’이라 불리며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규 음반은 4장 모두 100위권에 들었다. 데뷔음반(92)이 24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2집(93)이 30위, 4집(95)이 36위, 3집(94)이 57위를 차지했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 장르 음반은 순위권에 포함되지 못했다. 박준흠씨는 “트로트 장르는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보다는 싱글 중심의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앨범 차트’에 포함되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70년대 이전 음악이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60년대까지는 ‘히트곡 모음집’ 개념이 강했지,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적 주제를 갖고 작품으로서의 음반으로 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상위권 순위를 살펴보면 80년대 중·후반에 명반이 쏟아져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상위 20위에 오른 음반중 10장이 이 시기에 발매됐다. 박준흠씨는 “들국화가 데뷔한 85년에서 김현식이 죽은 90년까지 한국 대중음악계는 스타일이 가장 다양했고, 여러 세대 음악인이 공존했으며, 주류 음악권에서 명반이 나왔던 시기”라고 분석했다. 예상과 달리 90년대 대중음악을 주도한 프로듀서 겸 작곡자들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프로듀싱 등 ‘기능적’ 측면보다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창작력’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박준흠씨는 “음악산업의 핵심은 ‘작품으로서의 앨범’”이라며 “음반을 사는 음악 마니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음악사적인 부분에서도 음반이라는 개념을 환기한다는 측면에 이번 기획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앞으로 1위~100위 음반에 대한 리뷰를 1년여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글 백승찬·사진 박재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1. 들국화 1집 (1985/서라벌레코드) [전인권(v,g), 최성원(v, g, b, key), 조덕환(g, v), 허성욱(key)]

  결코 짧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 장의 음반만을 고르라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현실보다 과대포장되어 온 것이 과거이고 보면 그러한 거품을 걷어내고 결과물 자체를 냉정하게 응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 경제적 여유 속에 도사리고 있던 교묘한 통제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하던당시의 젊은이들에 대한 회상이 단지 통기타, 청바지 그리고 생맥주로 그쳐진다면, 그리고 80년대라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 의미를 갖는 명제가 한낮 운동권의 회상으로만 그친다면 그 시기 모습을 드러낸 4명의 젊은이들의 이 역사적인 첫 발디딤은 추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4가지 독자적인 아이덴디티의 조합으로부터 파생된 들국화라는 록밴드가, 그리고 그들이 내지른 첫 번째 외침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대중음악에 있어서 적지 않은 것이었다.

호황 뒤로 얼굴을 숨긴 제도권의 입김으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한 채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던 가요계의 자신의 틀에만 안주하고자 하는 록과 모던 포크 등 대학 중심의 음악들이 위와 밑으로 나뉘어 더 이상 공유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들국화가 던진 정사각형의 출사표는 긴 동면에 접어든 듯한 대중음악을 깨우게 된다.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각자의 역량이 충분한 4명의 싱어 송 라이터들이 '음악이란 현장에서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 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이 땅의 음악인들과 청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의 전인권의 절규와 <매일 그대와>에서 보여준 최성원의 감성 어린 목소리, 허성욱의 절제된 건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나타난 조덕환의 곡 쓰기 그리고 최구희, 주찬권, 이원재 등 당시 최고의 세션맨 등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이 음반이 철저한 싱어 송 라이터의 감각과 역량으로 라이브를 위한 라이브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이로써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밴드'라는 단위의 구성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비로서 진정한 의미의 음악인들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들국화는 1집 이후 실망스러운 후속 작들과 잦은 멤버교체 등으로 호흡을 길게 갖지 못한 채 신화로 남게 되었고 대중음악사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답보의 상태를 맞게 된다.

  그 이후 철저한 상업논리에 의한 인기곡의 생산과 재생산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었고 '노래 만들고 노래 하는' 밴드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별칭하에 지하로 가라앉게 된다. '만일 들국화가 데뷔 앨범과 같은 에너지로 그 생명력을 키웠더라면 대중음악은 다양성과 독자성의 자양분을 충분히 흡수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갖고 표절과 시스템화되어 버린, 일방적인 한 장르의 득세로 다양성과 함께 그 항체를 잃고 점점 고사해가는 듯한 현 가요계를 바라볼 때 13년 전에 뿌린 이 씨앗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은 더할 뿐이다.

  아직 소멸하지 않은 13년 전의 그 씨앗들은 매스미디어와 자본에 지배되는 대중음악계의 변방에 자리하며 마로니에와 신촌, 홍대 근처의 지하에서 다시 제2의 들국화로 피어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즉, 이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자신의 색깔을 간직한 채 세상에 당당히 평가 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들국화가 13년 전에 보여주었던,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가능성이다. (황정)

 
1집 들국화
장르/스타일
가요 > , 락/메탈 >
발매정보
1985.09.10 (대한민국) | 동아기획

앨범소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영원한 성역과도 같은 이 기념비적인 작품에 더 이상 어떠한 찬사와 부연설명이 필요할까? 격동의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이들의 송가였던 도발적이고 선동적인 "행진 한국형 록 발라드 "그것만이 내 세상"과 "사랑일 뿐이야"를 위시해, 최성원의 감수성이 깃든 "매일 그대와" 조덕환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 어느 곡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기적인 완성도는 우리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반이란 수식어가 상투적인 빈말이 아님을 증명한다. 본작이 비틀즈의 [Let It Be] 재킷을 따르고 있는 것은 사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대목이다. 가장 완벽해 보이는 네 명의 싱어송라이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두 그룹이 닮았고, 서로의 넘치는 창작력과 능력을 조율하지 못하고 그것이 마지막 작품이 되고만 비틀즈와 마찬가지로 들국화 또한 이후 데뷔 앨범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묘한 저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글/ 이태훈(hyang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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