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섬 또바(lake toba)천국의섬 또바(lake toba)

Posted at 2010. 6. 1. 10:40 | Posted in 해외여행정보/말레이,싱가폴,인니

★메 단 ( Medan )

메단은 북 수마트라주의 수도이고, 국제공항이 개항되어 있으며 인구가 280만이나 되는 자카르타, 수라바야 다음으로 인도네시아에서 3번째 큰 도시이고, 20여개의 대학이 모여 있어 경제, 교통, 교육의 중심지이다. 우리의 목적지 또바 호수 (뚝뚝 마을)를 가려면 거의 대부분 메단을 경유한다. 메단 가는 비행기는 인천에서 싱가폴 항공과 말레시아 항공이 있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페낭에서는 에어 아시아, 싱가폴에서는 실크 에어 등이 운항하고 선박 편은 주로 페낭에서 인도네시아 벨라완 항을 통해서 메단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대부분 여행객은 자카르타에서 국내선 항공을 타고 메단으로 가고, 가끔은 자카르타에서 30여 시간 버스를 타고가거나 선박 편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메단 중심가 마스지드 라야(Masjid Raya) 거리에는 메단 대사원(Great mosque)과 유키몰(Yuki Mall, 4층 백화점) 등이 있고 이 근방에는 고급 숙소와 함께 외국인이 즐겨 찾는 여행자 숙소(6~7RP) Pondok Angel hotel Residence hotel이 있다.


★또바호수 ( Lake Toba )
 

또바호수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동남아에서 제일 큰 호수라 한다. 남북의 길이가 100Km, 평균수심 20m에 최고수심이 900m 되는 바다같이 넓고 맑은 아름다운 호수인데 해발 900m 산속에 위치해있다. 또바호수 안에는 길이가 50~60 Km, 폭이 30 Km의 고구마 모양의 사모시르섬이 또바호수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면적이 싱가포르와 비슷하단다. 사모시르섬은 빠라빳에서 또바호수를 건너는 배로 30~40분 거리에 떨어져있지만, 반대쪽은10m의 교량으로 육지와 이어진다. 사모시르섬 중간에 빠라빳 쪽 호수변으로 젖꼭지 모양으로 볼록 튀어나온 조그만 반도가 하나 있는데 여기가 여행객이 많이 찾는 뚝뚝마을(TUK-TUK)이다. 

섬 일주도로를 따라 뚝뚝마을에서 남쪽 4~5Km에 또목(TOMOK)이라는 큰 마을이 있고, 반대로 북쪽 4~5Km에 암브리따, 19Km 떨어진 시마닌도 (SIMANINDO), 섬을 반바퀴 돌아가면 호수를 건너는 10m 교량으로 육지와 연결되는데, 다리 건너 큰 화산 쪽 도로를 1Km 정도 올라가면 뚝뚝마을에서 43Km 지점에 온천이 있다 빠라빳 선착장에서 또목마을까지는 보트와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페리가 한 시간 단위로 밤 9시까지 운행하는데 1인당 배삯은 4000RP 이지만 빠라빳에서 뚝뚝마을로 오가는 보트는 보통 밤 7시에 마지막 배가 끈어지고, 1인당 배삯이 7000Rp인 대신에 숙소마다 대부분 선착장을 만들어 놓아서 집집 마다 돌아다니며 승객을 상하선 시켜주다 보니 비싸다. 또 아침 6시부터 한시간 단위로 오고 가는 배가 서로 교차 운행하며 숙소 선착장 마다 돌아다니는데 30여분, 호수를 건너가는데 약 30분이 총 1시간이 소요된다. 

 

인도네시아는 국가전체가 거의 다 이슬람교를 믿지만, 유일하게 이 곳 사모시르 섬은 기독교를 믿는 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개고기도 즐겨 먹고 술도 먹고 잘 논다. 유독 이 곳만 기독교를 믿는 이유는 맨 처음 수마트라 섬에 기독교가 전파 되었다가 후에 모두 이슬람교로 개종을 했는데...

이 곳 사모시르 섬은 고립되어 있기도 하고, 이 곳 원주민들은 카니발리즘 즉, 식인풍습이 있어 예전에는 이 곳에 들어오기를 아주 무서워 했다고 한다.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식인 풍습이 남아 있다가 이제는 완전히 없어졌다고 한다. 이 무시무시한 식인 풍습이 이곳에 존재한다 는 것은 9세기 경 한 아랍 학자의 보고서에서 우연히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후 탐험가인 마르코폴로도 이에 관해 언급했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으며, 마르코폴로의 말을 전해들은 또 다른 호기심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몇 번에 걸쳐 이곳의 방문을 시도하였으나 바탁족의 영토에는 실제로는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하였다. 식인 풍습은 1840년 토바바탁족의 지역에서 천신만고 끝에 일년 반을 머물면서 이 끔찍스러운 살육의 현장을 몇 번 목격할 수 있었던 중국인 지리학자 '중운'의 보고서에 의해 더욱 자세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그가 기술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보면 당시의 끔찍한 광경을 보다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날 저녁무렵 그들은 포로 중 한 명을 사람들이 모두 운집한 마을의 공터로 끌고 와 나무기둥에 묶었다. 마당에는 여기저기 피워놓은 여러 개의 모닥불과 요란한 북소리가 그러챦아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고조시켰다. 포로는 이미 삶을 포기한 듯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신음소리 한 모금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추장이 엄숙하게 칼을 빼어 들고는 앞으로 걸어 나와 부족을 향하여 일장 연설을 하였다. '이 죄수는 악당 중의 악당이며 인간이 아니고 인간의 탈 을 쓴 악마로서 이제 그 죄 값을 이 자리에서 치르게 되는 것이다.' 연설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추장은 뚜벅뚜벅 죄수의 앞으로 걸어가 팔뚝과 뺨을 살을 칼로 한 점 큼직이 베어내고는 줄줄 흐르는 피를 입맛을 다시면서 맛있다는 듯이 빨고 핥아먹은 후 얼른 모닥불로 가져가 불고기 굽듯 인육(人肉)을 정성스레 구워 질겅질겅 씹어먹고 있는 것이었다. 추장이 한 점 베어내고 난 후에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이 피범벅이 된 가엾은   포로에게 몰려들어 마치 사자 떼가 영양의 고기를 잡아 뜯어먹듯 칼로 살을 베고 잡아뜯고 심지어는 팔 다리를 뼈 째로 토막 내어 불에 구워 먹는 사람도 있었으며, 몇 명은 자신들의 용맹함을 과시하려는 듯 날로 인육을 먹는 이도 있었다. 포로의 처절한 비명은 이들의 흥겨운 파티를 더욱 즐겁게 해줄 뿐 일말의 동정심도 얻어낼 수 없었다. 이윽고 비명소리가 완전히 멈추었을 무렵에는 포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분해되어 모닥불 속에서 구워지고 있거나 이미 누 군가의 위 속에서 소화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모든 과정이 불과 일 이십 분 사이의 일 이였으며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이처럼 이 곳 사모시르 섬은 외부에 '오지' '식인 풍습' 등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