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H(실크로드,훈자마을) 여행기KKH(실크로드,훈자마을) 여행기

Posted at 2010. 5. 30. 17:49 | Posted in 해외여행정보/인도,네팔,파키스탄

훈자(Hunza)마을

 

  어릴 적, 중학교 다닐 때이던가. 훈자마을을 다녀온 외국인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히말라야 산록, 인더스 강을 출렁다리를 타고 건너가면 훈자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살구 씨를 많이 먹고들판에는 8,90노인들도 농사일을 왕성하게 하는 장수마을로 신선들이 사는 것 같은 파라다이스라는 기억이 남아있었지만, 사실 실크로드 여행준비를 하면서 훈자가 파키스탄에 있음을 확인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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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동안의 장거리여행의 여독이 만만치 않은데, 전통 있는 숙소 Old Hunza Inn을 찾다보니 숙박비는 저렴(1인당 50 Rps. US$1=60Rps)했지만 침실, 욕실, 침구 모두가 늙은 편이었다. 게다가 피곤한 상태에서 접한 첫 파키스탄 식 저녁식사는 양념이 비위에 맞지 않아 겨우 허기만 면하고 수저를 놓아야했다. 그런데 식사를 계속하지 못한 더 큰 이유는 주방으로 들어가는 물통에 담긴 물 빛깔이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계속 보아오던 흙탕물 강물 빛깔과 비슷했다.   이래저래 곤드라져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 1시경에 잠이 깨, 아침까지 뒤척여야 했다.

 

(메마른 산중에 있는 훈자마을)

 

  그러나 사워를 하고 온 다른 일행들은 물이 아주 좋다고 기분이 좋아보였다. 첫인상에 뒤틀린 선입견은 매일 하는 사워도 하지 못하고 참아야했다. 식사도 하는 수 없어 우리 식으로 간단하게 끝마치고, 반나절 관광을 떠났다.

 

  마을 뒷산에 있는 Eagle-Nest(해발2,900m)를 오르는데 아주 가파르고 좁은 외길을 4륜구동 찝차로 갔다. 올라가는 연도는 급한 경사지 인데도, 돌담을 쌓아 크고 작은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어 감자를 심고 옥수수를 심었다. 높고, 낮은 돌담 밭두렁에는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었는데 살구나무가 제일 많고, 그다음으로 사과나무가 많았다. 특히 살구나무들은 수령이 몇 백 년은 됨직한 아주 볼품 있는 나무들이었다. 훈자마을(해발 2.500m)에는 살구 수확이 끝나고 없었는데 산 중턱에 이르니 살구가 한창이다. 가지가 늘어지게 앵두처럼 많이 다렸는데 황금색으로 색깔이 너무 고왔다. 사과나무도 적과를 하지 않은 채 모두 달려 있어 다닥다닥 가지가 늘어졌다. 고산지대라 병충해가 없는지 약은 치지 않은 것 같은데 과일이 깨끗하다.

 산을 오르는 길목, 띄엄띄엄 있는 농가 지붕이나 마당에는 살구를 말리느라 온통 황금색이다. 이곳은 남·여 차별이 없는지 여인들도 멜통을 지고 밭에서 농작물을 수확해 오고, 당나귀를 몰고 산으로 오른다. 밭에는 대부분 감자를 심었는데 풍작이다. 이상한 것은 감자밭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색깔의 양귀비꽃이 피어있고, 돌담 밑에는 대마초 꽃이 꽃가루를 날리고 있다.

 

  독수리둥지라는 고산 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살구나무가 많다. 정자나무처럼 아주 큰 나무도 있다. 살구나무는 늙으나 젊으나 살구가 많이 달려있다. 어릴 때 우리 큰집 살구 따먹던 생각이 나면서 군침이 돈다. 운전기사에게 살구 좀 사달라고 했더니, 그 냥 따 먹으란다. 그래도 그렇지, 중국에서는 포도 한 알만 따 먹어도 크게 벌금을 문다고 했는데, 훈자에서는 그냥 따먹으란다. 이곳에서는 살구는 누구나, 얼마든지, 마음대로 따먹는 거란다. 그래도 머뭇거리자 운전기사가 밭두렁에 있는 살구나무로 가서 한 움큼을 따준다. 별로 크지는 않은데 맛이 아주 좋다. 당도가 높은 떡 살구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1kg정도 더 따준다. 맛있는 떡 살구를 먹으면서 빛 좋은 개살구이야기를 했더니, 주변의 개살구들을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훈자마을은 살구 맛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노인들부터 아주 어린 아가들까지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시켜서 하는 행동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반가운 표정들이다. 그 미소와 밝은 표정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훈자의 명성을 듣고 세계 각국 사람들이 머물고 있어 주민과 여행객이 반반은 될 것 같다.

특별히 치레하지도, 준비하지도, 의식하지도 않는다. 일상대로 살면서 보는 사람마다 밝고 맑은 눈짓을 주면서 “How are you Sir!" Sir라는 존칭으로 대접한다.

 

  훈자왕국의 성곽이 세워지기(AD765) 전부터 있었다는 거대한 호두나무 그늘 밑에 모여게시는 84, 86, 92세 노인들이 손을 내밀며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세계 5대 장수마을답게 노인들은 기력이 왕성하시다.

  오전 동안 잠깐 둘러보고 점심식사 후 곧바로 떠나기로 한 일행 모두가 하루 밤 더 자고 갔으면 한다. 필자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그리던 훈자마을이 정이 딱 떨어졌었는데 무엇에 끌렸는지 떠나기가 싫어 졌다. 하루 밤만이라도  더 자고 싶어졌다. 마음이 느긋해 졌다. 모두 이구동성이다. 고향에 온 것 처럼 뚜렷하게 할 것도 볼 것도 없으면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1,2, , 두 달. 별다른 일 없이 눌러 있는 여행자들이 많은가 보다. Old Hunza Inn 식당에 비치된 방문록에 기록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의 소감도 비슷했다. 사람들이 좋고, 민박이 좋고,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가기 싫어 머물고 있단다.

당일치기로 스치면 모르겠지만 하루 밤이라도 자본 사람은 하루로 끝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더 머물게 되는 것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훈자마을에  볼거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사방에 7m급 고봉이 만년설로 덥혀있고, 가까이는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을 앞세워 분지를 이루고 있다. 훈자마을은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과학적이고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수로를 만들어 연간 강우량이 100m/m도 안되지만 온 마을을 녹색의 장원으로 만들어 그림 같은 샹그릴라를 실현해 놓고 있다.

 

  마을에는 옛 훈자 왕국(12,3세기~1974) 2개의 왕궁요새가 잘 보존 되어있고, 수많은 외침을 견뎌온 미로가 복잡한 토담집 옛날 마을도 있다. 마을 뒤 독수리 둥지라는 봉우리는 해발 2,900m의 전망대로 그 위에 오르면, 주변의 산들이 코앞으로 닦아오고, 태산을 가르는 인더스 강가로 펼쳐지는 마을 전경은 그림 같다.

마을 뒤에 바짝 붙은 Lady Finger(7,765m)은 이름 같이 영락없는 숙녀의 예쁜 손끝이다. 웬만한 등산가는 5시간이면 빙하까지 트래킹도 할 수 있단다 

훈자는 어머니 품과 같았다. 어머니는 있어도 티내지 않고, 하고도 뽐내지 않았다.

 

머드팩 뒷물 같은 생활용수는 높은 산골짜기에도 같은 색깔이다. 시체 태운 잿더미를 통째로 쓸어 넣는 인도의 강가강(간지스강) 강물이 콜레라도 치유한다더니 히말라야는 정말로 신통력이 있는지 훈자마을의 생활용수는 석회석 흙탕물 같은데 이물을 평생 먹어도 아무런 탈이 없고 장수 한다고 한다. 필자는 일행 중에도 덜 된 사람이라 훈자마을 물을 먹지는 못하고 씻기만 하고는 스스로 용기 없는 사람으로 자책했다.

  그래도 훈자가 좋았다. 떠나기가 아쉬웠다. 음력 715일 백중달이 눈이 부시도록 밝아서 만이 아니다. 둔감한 경상도 사나이라 단시간 내 훈자와 속살을 나누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머지않아 두 밤만 자고 떠난 것을 후회할 것이다.

일행 중 어느 분이 사랑하는 부인과 다시 오고 싶다는 이야기에 적극 동감한다.

 

 

훈자(Hunza)에서 스카루두(Skardu)까지

 

  해발 2,500m 훈자를 떠나 길깃 Trans Point(1,700m)까지 105km의 도로는 군자랍강을 따라 800m를 하강하는 내리막길의 계속이다. 신중한 듯한, 중국운전사들에게 익숙해서인지 좋지 않은 급경사 커브 길을 내 달리는 파키스탄 운전사들을 운전기술이 좋다고 할까? 겁이 없다고 할까? 금방 차가 부서져버릴 것 같은 불안한 충격을 반복하면서 벼랑길 협곡을 질주한다.

   주변의 산세와 경치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공포에 떨고 있었다. 길 깃에서 스카르두까지 214km는 더했다. 인더스 강 물을 따라 고도 750m를 상승하는 과정인데 끝에서 끝까지 협곡, 절벽, 포효하는 흙탕 강물, 계속되는 경적 질주, 6시간동안 혼을 빼놓는 곡예, 이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저승의 문턱 Skardu에서 라훌핀디까지

 

발전하는 중국, System이 정착된 중국, 정직 성실한 중국, 중국인들과 24일간의 생활을 마치고 군자랍패스를 넘어 급경사, 급커브 KKH(카라코롬 하이웨이) 하강단계에 들어서면서 중국과 다른 파키스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2008년 올림픽을 목표로 전 국토의 면모를 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는 발전적이거나 쇄신적인 움직임을 찾기가 어려웠다. KKH의 낙석, 토사가 흘러내린 도로도 간신히 차가 지날 정도의 임시조치만 되고 있었고, 훈자라는 이상촌도 마음속에 그려져 있던 파라다이스와는 차이가 컸다. 우선 훈자 마을의 생활용수의 물빛이 영구불변의 흑 회색인 것과 마을 담장 밑 여기저기에는 가지가 꺾이어진 대마초가 자라고 있었고, 다락 밭  감자 골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양귀비꽃이 피어 있어 의아심을 갖게 했다.

 

  군자랍 고개에서 시작된 군자랍강이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데리고 300km 내려와 길깃 어귀에서 길깃강과 합류한다. 합류한 두 강은 10 km 더 내려와서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인도의 라다크(Ladakh) 쟌스카르(Zanskar)와 스카르두(Skardu)를 거쳐 온 인더스 본류와 합쳐진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이 합류지점으로부터 약 200km 상류에 위치한 스카르두는 파키스탄의 상그릴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행 매니아들이 유혹 당하게 되어있다.

필자의 경우 중국의 운남성에서도 완전한 상그릴라를 확인하지 못하였으므로 “진짜 샹그릴라가 파키스탄에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과 스카르두에서는 멀리서나마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 K-2(8,611m)를 볼 수 있다는 정보오류 때문에 Skardu행을 택했는데 막상 KKH를 벗어나 합류된 길깃강의 Alam Bridge 출렁다리를 미니버스를 탄 채 출렁 출렁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여 인더스강을 만나는 순간 문자그대로 아찔함을 맛봐야 했다.

(7,788m 라카포시의 위용)

  4,5m급산과 산들이 직강으로 떨어진 계곡(해발 1,500m부터)에는 오직 성난 인더스 강만이 중국의 양자강이 호도협에서 급류를 이루는 것처럼, 미친 듯 휘감는 물굽이를 만들면서 4,5m 낭떠러지 밑을 흘러간다.

인더스 강 양안으로는 길이 붙을 수없는 가파른 절벽이라 여유가 없다. 그래서 도로는 절벽에 반 터널식으로 파내고 길을 만든 곳이 전체 거리의 1/5은 됨직하다. 200km 1/5, 40km, 100리 이상이 제비집같이 파서 낸 길이고, 도로의 높이가 수10m에서 몇 백m에 이르는 구간이 3/5 120km, 300리는 된다. 도로의 폭은 차량 2대가 어렵게 교차할 정도다. 이러한 구간이 전체의 90%정도다.

 

  오전 1050분 길깃 입구 환승 주차장을 출발한 마이크로버스는 만원상태에서1,000m/200km 경사 길을 운전이 아니라 곡예를 하면서 험난한 계곡길을 질주 등판한다.

그들은 일상 다니는 길이라 예사일는지는 모르지만, “주여” “알라여” “부처님이시어” 구원을 부탁할 대로 부탁해본다. 반 이상이 비포장 상태로 험한 커브 길을 씽씽 소리가 날 정도로 교행을 하며 경적을 울리고, 차 안에는 귀청이 얼얼할 정도로 향토음악을 틀어댄다.

내려다보면 천 길 낭떠러지, 위로 쳐다보면 천길, 만길 깎아지른 절벽, 금방 낙석이 쏟아질 것 같고, 운전수는 미친 듯이 달리고, 저러다가 까닥하는 날이면 ‘아야’소리 한마디 못하고 수십 수백 길 인더스 강 흙탕 급류 속으로 말려들 것 같다. 제발 저 듣기 싫은 음악(?)이라도 좀 꺼 줬으면 좋겠는데...

길깃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미국인과 담소하는 과정에서 Skardu 간다니까 손으로 파도 타는 시늉을 하기에 지레짐작으로 “스릴과 서스펜스” 했더니 그 친구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던 속내를 짐작할 것 같았다.

  하마는 끝나려나? 하마는 끝나려나? 끝이 없다. 훈자에서 미리 사둔  1/100만 카슈미르지도가 맞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도는 정확하다. 지도에는 끝까지 강과 길만이 계곡 산속으로 표시되어있다.

6시간 30분 도중 식사 휴식시간 38분을 제하고는 계속 달려왔다.

도중 몇 군데 산자락에 작은 밭을 일구고 사람이 살고 있기도 했지만 절벽도, 급류도, 협곡도 모양은 달랐어도 상태는 계속 같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지옥문 낭떠러지를 가까스로 빠져나와 오후 5 15분에 스카르두에 도착했다.

 

  버스가 정지한 곳은 도심인 듯, 하지만 거리는 엉망이다. 고물차량들이 뿜어대는 유연휘발유매연과 먼지를 흩날리고 경적을 울려대며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3바리 릭샤, 나귀들이 끌고 다니는 마차, 자전거, 무질서한 상가, 예사롭지 않은 눈초리들.......

피곤은 둘째고 숨이 막힐 것 같은데. 나보다 더 성급한 일행 중 한사람이 “이런 데서는 도저히 쉴 수 없으니 외곽으로 나가자”하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나간 잠시 후, 이곳에서 제일 좋다는 Marshahrum 호텔을 잡아 놓고 왔다. 다행히 값도 괜찮으면서(D+3B/us$50,조식포함) 조용하고 깨끗하고 주변 경관도 좋아 극도에 다다른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었다.

 

  다음날은 이곳을 온 목적인 샹그릴라를 찾아 나서기로 했는데 샹그릴라는 해질 무렵이 볼만하다고 해서 먼저 해발4,000m에 있는 Deosai 국립공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덮개가 없는 4륜구동 사파리 찦 차를 운전수 포함 6명이 타고 해발고도2,450m에서 4,000m를 향해 쉴 새 없이 올라갔다. 굽이굽이 스카르두 상수원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상수원 땜 공사가 한창인 산중 호수를 지나 10여 분간의 포장도로를 지나자 완전 비포장 자갈길이다. 4륜구동 찦 차의 굉음과 매연과 먼지를 꼬리에 달고 힘겹게 올라간다. 1시간 반 동안에 1,500m를 등판하여 4,050m Deosai공원입구 매표소에 도착했다. 미화 20$/5인 입장료를 지불하고 공원 능선 길을 달린다. 국립공원은 4m를 넘는 고원지대인데도 푸른 초원이다.

목초로는 쓰지 못할, 색깔만 초록인 얇은 초원이 계속된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달리고 달려도 같은 모습의 구릉과 얕은 계곡이다. 개울물이 무너미를 경계로 상수원과는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앞자리에 앉은 운전수의 머리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것을 보면 뒷자리에 앉은 내 모습은 더 할 것이다. “카메라에 고운 먼지가 많이 묻으면 오작동을 하거나, 동작 그만이라”는데  비닐봉지로 케이스까지 쌌다, 풀었다. 터덕거리는 요동에 엉덩이만 아프지 별로 볼 것도, 찍을 것도 없다. 무엇이 있다고 국립공원인가? 다른 차들을 앞지르거나 교차할 때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울화가 치민다. 죽을 고생을 하며 왔는데, 별로 볼만한 것도 없으니.

1시간 20분을 더 달렸는데도  계속 비슷한 상태다. “차 돌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운전수에게 손짓 발짓으로 차를 돌리라고 했다.

운전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You like" "You like" 조금만 더 가면 좋은 데가 있다는 것이다. 냇가에서 잠시 쉬고 나니까 또 욕심이 동했다. “여기까지 고생하며 왔는데 뭐가 있어도 있겠지!

30분을 더 달려 해발 4,150m 고개를 넘어서자 사파리 찦 차들이 몰려있다.

 

  "호수다" 고도계 4,100m, 남미 페루의 티티카카호가 3,800m로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데 그 보다 300m 더 높은 Sheosar Lake.

초원의 풀들이 호수 물 덕분인지 풀 섶이 제법 두텁다. 바닥에 깔린 꽃들은 크지는 않지만 요염한 자태로 처음 보는 것들이다. 노랑, 빨강, 연분홍, 보라 색깔들이 아주 맑고 깨끗하게 예쁘다. 고산 증으로 걸음은 게걸음, 가슴이 울렁울렁, 호수 물에 손을 씻어보며 고통을 달래 보지만 별 차도가 없다. 좋아하는 사진도 대충 골라 찍고, 호수와 구름사진도 찍었다.

 

  멀리 이름 모를 만년 설산이  우뚝 솟아있고, 호수 면에는 쪽빛 하늘과 솜털 같은 뭉게구름이 깨끗하게 비치고 있다. 유별난 서양 청년 몇 몇은 호수에 들어가 자유 영을 멋지게 하며 물장난을 친다. 고산지대인데도 물이 심하게 차지 않고, 그렇게 깊지도 않은 듯 했다.

날씨가 좋다. 하늘과 호수와 구름이 너무도 멋지게 어우러진다. 호수의 크기는 대충 원형으로 둘레가 4,5km 될 것 같다.

 

  별로 더 머무를 이유도 없지만 우리는 샹그릴라를 보기 위하여 운전기사를 재촉했다.

그런데 차를 바꿔 타라는 것이다. 우리가 타고 온 차가 고장이 났단다. 덮개가 있는 차라 먼지의 기습이 좀 덜했다. 그런데 바꾼 차는 15분마다 냉각수를 보충해줘야 한다. 이들이 우리를 속인 것이다. 못살 짓들만 한다. 기회만 있으면 속이려 든다.

운전기사는 같은 기사인데 차가 문제가 있으니까 내려오는 시간도 올라 갈때만큼 3시간 반이나 걸렸다. 오후 4 20분 관광회사에서 다시 차를 바꿔 타고 샹그릴라로 다렸다.

 

  샹그릴라는 스카르두 분지 입구 인더스 강 출렁다리 쪽이다. 큰 길에서 왼편 계곡으로 들어서자 맑은 물이 도랑에 넉넉하게 흐르고, 길옆에는 과일 포대가 바리바리 쌓여 있고, 도랑에는 오리들과 거위들이 사이좋게 노닐고, 풀밭에는 검은 소, 얼룩 소, 황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밭에는 대여섯 명의 아낙들이 머리에 수건을 쓴 채 밭일을 하고 있다.

나 어릴 때 살던 내 고향이 샹그릴라였던지 내 고향에 온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에 쌓여 기분 좋게 올라가는데  몇 몇 비 파키스탄 인들이 차를 세워 놓고 웅성웅성 한다. 우리도 차에서 내려 보니 커다란 철문이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무장 경비병이 서성댄다. 그리고 대문에는 파키스탄정부 샹그릴라 리조트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다. 그리고 사람도 없는 매표소 초소만 썰렁하게 서있다.

  왔다, 갔다 하는 경비병에게 들어갈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고개를 흔든다. 우리는 샹그릴라를 보려고 극동 한국에서 왔노라고 했더니 경비전화로 어딘가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지만 역시 거절이다. 입장료를 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망할 o 들” 욕이 절로 나온다. 샹그릴라라는 소문만 내놓고, 점잖지 못한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도 못한 채 쓴맛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실망이 너무 커서 정이 떨어졌다.

 

  이제는 스카르두를 빠져 나갈 일이 남아 있다.

지도로 보면, 인더스 강을 따라 인도의 레로 가면 되는데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으로 국경이 폐쇄되어 그 쪽으로는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들어올 때의 고생을 생각하면 도저히 같은 방법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비행기 편으로 이슬라마바드로 나가야 할 것이다. 일요일이라 항공사에 직접 확인 할 길도 없고, 여행사에 부탁하고, 호텔에 부탁해도 시원한 답변을 주지 않는다. 이상한 예감이 들긴 했어도 최악의 경우 5명이 분산하더라도 항공편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 상황은 절망적이다. 앞으로 1주일 이내는 예약을 받을 수도 없고, 비행기는 매일 오게 되어 있지만, 언제 온다는 확인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세상천지에 이런 나라도 있단 말인가?” 한탄해봐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다행히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라왈핀디 행 대형 버스가 있다는 것이다.

 

  달리 무슨 방도가 없기 때문에 서둘러 이 차라도 자리를 확보해야 하기에 7석 남은 중 5석을 차지했다. 다행히 2자리는 중간이라 연장 순으로 배정하고, 맨 뒤 1석과 뒤에서 두 번째 2석에 앉아 22시간 예정이라는 장도에 올랐다.

길은 하나뿐이다. 2일전 지옥문 같던 그 길이다.

출발시간 10시인데도 자동차 엔진룸을 열었다, 닫았다. 앞바퀴사이로 사람이 들락날락. 뭐가 시원치 않은 모양이다.

“이 곳은 알라의 땅이니 알라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표도사고 자리까지 지정되었으니 조금 늦어도 가기야 가겠지?

  10, 20....... 1시간 12분이 늦은 1112분에야 출발한다. 주유소에서 기름 채우고 중간에 어정대고, 출발 30분 후 헌병초소에 당도 했는데, 승객들이 대부분 하차하더니 서로 수군수군, 15분 후, 차를 원점으로 되돌려 보낸다자동차에 부실한 부분이 있어 수리하고 가라는 조치인 듯. 스카르두 시내로 다시 와서 수리하는데 1시간 반. 오후 135분에야 다시 출발했다.

 

  이제는 가는 대로 맡기는 수밖에 없다. 30분 후 인더스 강 출렁다리를 건너 협곡으로 들어갔다. 길은 올라 올 때와 같은 길이다. 올 때 미니버스 기사보다는 대형버스(30인승)기사가 차를 얌전하게 몰지만, 내려가는 길이 더 가파른 느낌이다.

강 쪽 창가에 앉아서 보니 낭떠러지는 더 높아 보이고, 강물의 소용돌이는 더 심해 보였다. 강물은 유속이 얼마나 빠른지 자동차보다 훨씬 앞지른다. 무슨 연유인지 강물은 완전 회색 흙탕물이다. 절벽의 토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스카르두를 출발한지 4시간 계속 협곡을 따라 내려가는데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 안개보다 더 짙은 모래구름이 계곡을 가득 메운다. 시야가 가려지고 모래가 눈처럼 쌓인다. 운전사도 잔뜩 긴장하며 그 요란한 음악을 끄고 차를 거의 정지 상태로 저속 운행한다. 10여분동안 계속된 모래 바람은 계곡을 따라 상승한다. 인더스 강물은 조금도 여유가 없이 급하게 흘러내린다. 가도 가도 같은 상태다.

  깎아지른 절벽, 강물만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협곡, 털털대는 도로, 지겨운 여로 KKH까지 200km, 달리 대책이 없으므로 이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계곡으로 몰려오는 모래구름)

 

  어둠이 짙어지고 사방이 깜깜해진 오후 730, 6시간 만에 스카르두 대협곡 200km를 빠져나와 카라코롬 하이웨이에 진입했다. 주유소에서 재 주유하고 21시경에 Juglot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짜이와 짜파티 한 조각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하고 밤샘을 하며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갈 참인데 길깃주와 Diamar주 경계에 이르렀을 때 버스는 길옆으로 완전히 정차 당했다. 우리는 중간 중간 외국인 등록을 하면서 왔기 때문에 현지인 승객들과 어느 정도 친숙해졌는데 저녁식사를 할 때 앞자리에 앉았던 대학생에게 몇 분간 정차하느냐고 물었더니 6시간이라 했고,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모레 쯤 라훌핀디에 도착할거라고 해서 농담인줄 알았었다.

  그러나 주 경계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내일 새벽 4시까지는 운행 정지란다. 이유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따지거나, 꼬치꼬치 이유를 캐묻는 사람도 없다. 이 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 있는 듯, 차안에서 잠자리를 트는 사람, 버스 위로 올라가는 사람, 바위나 돌무더기를 의지하고 잠자리를 잡는 사람, 아주 노숙을 하기로 준비들을 하기에 우리도 하는 수 없이 버스 의자와 지붕위로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음력 7 19일 쪽박달이 중천에 뜨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아무리 뒤척여도 잠자리는 편치를 않았다. 그래도 일행 중 여행대가 주책거사는 그 밤도 즐겨보겠노라고, 반 열대야 훈풍이부는 버스지붕으로 올라가 요르단 와디럼 사막에서 보던 별을 찾다가 편한 잠을 잤노라고, 또 하나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노라고 약간 들떠있었다.

 

  시간은 밤과 함께 흘러 새벽 4시가 되었다.

4시가 되었는데도 먼동이 트지 않는다. 검문소관리는 버스를 보낼 생각을 않는다. 1시간, 5시가 되어서야 어슴푸레 날이 샌다. 그때서야 자동차 시동을 걸고 뿔뿔이 새우잠을 자던 사람들이 차안으로 몰려든다. 한마디 말도 없는 선량한(?) 파키스탄국민들은 가던 길을 계속한다. 다혈질 한국 여행자들은 “세상에 이런 나라가?” “무엇이 위험하단 말인가?” “위험하면 위험요소를 제거해야지........” “이런데도 어떻게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 수군대기만.......

그러나 그 것은 우리식대로의 생각이고.

 

  우선 길이 위험하다. 낙석이 군데군데 길을 막았고, 안전도가 미확인된 낭떠러지가 생길 수 있고, 50km의 거리에서 두 번이나 펑크가 났다.

이 길을 한밤중에 통행하다가 크던, 작던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도로조건이 좋지 않고, 무인지경이 몇 10km씩 연속되는 구간에서 어떠한 대책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길을 막는 파키스탄 관리만 원망할 수는 없겠다고 다소 이해가 되었다.

 

  두 번째는 카라코롬 하이웨이 인더스 강 Diamar 구간의 야간통행은 위험하다고 여행안내 책자에도 있단다. 이유인즉 무인지경 도로 불량 구간이 길고, 생활물자 조달을 위한 불량집단의 야간 기습가능성이 높고, 외국인 여자여행객은 먼저 보는 사람이 주인(파키스탄에서는 나다니는 여자들은 내 논 여자라고)이라는 관습이 있을 정도이므로. 불만스러웠지만 새로운 체험을 했다는 것 외에도 감사해야할 사건이라고 생각되었다.

 

  새벽 5시에 시동을 건 버스는 달리고, 달리고 하루 종일 달려(두 번의 펑크타임 2시간) 18시간, 스카르두에서 출발한지 36시간 만에 파키스탄의 옛 수도 라훌핀디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러나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바로 하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랫배가 툭툭 튀어나온 경찰관들이 차문을 막고 내리지 못하게 한다. 넓디넓은 주차장에서 30분을 실랑이 한 후에 결국 다른 후미진 곳으로 이동하여 하차하고 짐을 내릴 수 있었다.

 

11, 열대지망 열대야 때문인지 라훌핀디 사람들은 한낮같이 웅성대고, 성시였다.

 

정말로 저승 문 문턱까지 넘겨다 본 고행의 여로였다.

그래도 지난 것은 추억이다.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구관조는 메시아를 노래하다

             (파키스탄에서 

햇볕 쏟아지는 들판

돋아오르는 땀방울 신바람으로 식힌다

메시아의 꿈 겹겹이 쌓아 올린

어둠의 구석방

포만스럽게도 파키스탄구관조 노래는 구구절절이다

그 유혹의 멜로디 감미롭다 못해 처절하다

 

어둠이 덜 가신, 숙취 덜 풀린 애송아지, 망아지들

채근 질 하듯 메시아들의 힘없는 가락만 흐르고

들뜬 환상에 순리와 진리의 계단이 흙담처럼 무너지다

 

구관조 소리에 익숙 할뿐 그들의 항거는 없다

뜨거운 가슴 없이 혓바닥으로 날름대는

 

까마귀 과는 건망증이 심해 한 말도 잊어버린다던데

차라리 앵무였더라면, 앵무로 족할 것을

 

산하는 솟구칠수록 황폐하고

신록의 계절에도 메마르기만 한데

윗 전이 부린 억지, 암세포처럼 천민의 골수까지 파고들고

 

귀를 막아라, 눈을 가려라.

나팔수의 나팔을 더 크게 울려라

알라의 뜻으로.......

자기 주술에 자기 신이 잡히고

밤낮 모르는 푸닥거리에 관객도 구관조가 되는,

탁상공론 탁상놀음 메뉴판은 진수성찬이다.

 

닦달하라! 닦달하라!

너 알라는 백성을 사랑 한다고?

장책(粧冊)을 빗겨든 브라만들은 똥배가 점점 더 처지고

웃자란 탐관오리로 백성의 들판은 메말라가고

구관조 메시아노래만 부른다

참혹한 역사는 눈뜬 채로 잠이 든다.

                         2005.08.24 ubo

 

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국에서는 중파공로(中巴公路)라 한다.

신장성 성도 우루무치에서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인 군자랍패스까지는 1,867km,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군자랍패스까지는 857km이다.

그러나 카라코람하이웨이(KKH)는 중국의 카슈에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까지를 말하기 때문에 파키스탄 쪽 857km에 중국 쪽 카슈가르까지 400km를 더하면 총 1,257km가 된다.

그런데 보통 카라코람 하이웨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속도로(Express High Way)가 아니고, 고도가 높은(High Altitude Way)도로인 것이다.

  2005 8월 현재 중국 쪽 400km 구간에서는 대대적인 고속화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2008년 북경 올림픽 때쯤이면 문자 그대로 카라코람 고속도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파키스탄 구간은 지형과 산세를 극복하고 고속도로가 되려면 상당기간 가다려야 될 것 같다.

 

  이번 카라코람 여행 직전에  중국구간에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대 홍수가 있어 곳곳에 도로가 파손되어 차량운행시간은 별 의미가 없지만, 참고로 소개하면

일제 도요다 12인승 미니버스로 아침 7시에 카슈를 출발 했는데, 타쉬쿠르간까지 275km 9시간15분이 소요되었고, 타쉬쿠르칸에서 숙박한 후 10시부터 1시간동안 중국 출국수속을 하고 11시에 출발, 파키스탄 국경사무소가 있는 Sost(212km) 도착하는데 7시간이 소요되었다. 국경사무소가 있는 소스트에서 이슬라마바드(라울핀디)까지 770km를 가는 데는22시간정도 소요되어 전체 1,257km 운행시간은 38시간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 여행은 고소적응부담, 아래로 낭떠러지, 위로는 금방 낙석이 쏟아질 것 같은 절벽, 급경사 급커브 길을 곡예사처럼 달리는 운전사에 대한 불안감(필자 위주임) 등에 대한 부담만 없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천하절경의  연속이다.

하기야 위와 같은 부담도 육신과 정신적인 자극제로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특수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간별로 약술하면 카스교외를 벗어나는 과정은 오아시스 전원구간을 지나는 길이다. 앞으로 다가올 곤륜산, 파미르고원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지기도 한다 

한 시간 이상 달리다 보면 전원풍경이 넓지 않은 초원으로 변하면서 왼쪽으로 게즈강 건너로 붉은 사암의 알몸 산들이 시위를 시작한다. 높고, 낮고, 깊은 계곡, 엄청난 균열.......

강을 따라  농촌 전원 풍경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산들의 저마다의 자랑이 계속된다.

카슈를 출발한지 4시간 가까이 되자 8월의 맑은 날씨이지만 차창으로 스치는 바람결이 차갑다. 해발 2,400m 개공촌 검문소 근처부터 경치는 더 한층 절정을 이룬다. 계곡물도 옥수다. 7,719m 콩구루산의 하얀 만년설이 고개를 내민다.

 

 

  잠시 후 찻길은 냇물을 버리고 혼자 S 커브를 그리며 산등성이 쪽으로 올라간다. 파미르고원에 이른 것이다. 고도 2,950m, 오른쪽으로 채석장이 지나가고, 고도 3,200m 왼쪽으로 콩구르산 빙하가 가까이 닥아 온다. 5,6m 산들까지 하얗게 어깨동무를 한다. 빙하 끝자락에는 불도저에 밀린 듯, 고대 빙하의 토사가 작은 산을 이루고, 고도 3,400m의 언덕 같은 고개를 슬쩍 넘는다. 쿰타호, 모래호수다. 물인가, 소금인가, 모래인가, 봄날 저수지 얼음 녹는 것 같기도 하고, 편안하게 보이는 모래호수가 봉긋 봉긋한(예쁜 젓 무덤 같은)크고 작은 산들의 사랑을 받으며 물처럼 사평선(沙平線)을 이룬다.

 

(파미르 고원)

  한쪽에 고여 있는 물위에 비친 모래산과 하얀 구름은 더욱 아름답다. 이 황량한 호수 가에 키르기스탄 유목민들이 장사에 맛이 들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골동품 팔기에 여념이 없다. 강한 햇볕과 날카로운 살바람에 피부는 검붉게 굳어버렸다.

그래도 아직도 양떼를 데리고 천막 옮길 준비에 바쁜 진국 유목민도 보인다.

 

  이제는 콩구르산이 노골적으로 해맑은 구름치장을 하고 어깨를 이리저리 돌린다. 7,456m 무스타커산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팔 파오촌을 떠난지 1시간 새로 나타난 무스타커에 정신이 팔린 사이 카라코람하이웨이의 최고 명품 카라쿨 호수가 명경같이 나타난다.

옥색 호수 위에 허연 구름들이 둥둥 떠다니고 설산은 실제보다 더 선명하게 비친다.

언제나 있는지는 몰라도 말을 탄 순시원의 모습이 정말 멋지다.

 

  해발 3,700m, S 커브를 반복하며 고도를 더한다. 메마른 산봉우리와 고개가 다가오면서 타직자치구 입경환영 대형 간판이 정상에 서있다. 해발 4,200m란다.

여기서부터는 산세가 다르다. 100년만의 폭우도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는지 한 없이 메마르다. 주변경관도 단조롭다. 계속 내려간다. 해발 3,600m 타쉬쿠르칸에 도착한다.

 

  군자랍패스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는 사람이나, 파키스탄에서 중국으로 입경하는 사람도 반드시 이 도시에서 하루 밤 자야한다. 출입국 수속도 여기서 해야 한다. 출입국수속 업무는 오전 10(자체시간 8)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둘러봐야 소용없다.

 

  타쉬쿠르간에서 군자랍패스까지 125km 구간은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타쉬쿠르간 강을 따라 일정한 넓이의 초원이 옛날 빙하 밀린 자리는 진초록 카펫을 깐 듯, 간간이 양떼들을 방목하고 있다이 구간에는 6m급산들도 없기 때문에 설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랍고개 가까이에 이르면 천산남맥과 곤륜산이 머리를 맞대는 깊은 계곡과 크지 않은 합강이 아름답고, 멀리나마 8,611m K-2봉도 보인다.

 

(군자랍 패스 중국쪽)

  평지 같은 고원을 서서히 오르던 KKH는 합강 머리에 이르러 급하게 치 닿는다. 몇 번 똬리 틀기를 반복하면 중국군들의 주둔지를 지나게 된다. 양국의 경경선이 있는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국경은 하나의 콘크리트 기둥에 양쪽의 나라이름이 적혀있고, 한문과 영어로 환영의 표시가 되어 있을 뿐이다. 여기가 군자랍 패스다. 이 고개의 해발 고도는 각색이다. 중국지도에는 4,700m, 4,800m 두 가지로 다르고, 파키스탄 지도에는 4,934m(4,703m)로 표기해서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다.

군자랍 패스는 KKH여행에 있어 의미가 크다. KKH의 제일 높은 곳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두 나라 땅을 밟아 볼 수 있는 곳, 오르막길에서 내리막길로 바뀌는 곳  등으로 웬만한 사람은 고산증세로 게걸음을 걷게 된다.

 

  고개를 넘어 서면 60도 정도의 급경사를 S커브를 반복하며 내려간다. 이 곳은 암석지대도 아니고, 손바닥 크기부터어른 몸 크기 정도의 파쇄석 지대다. 돌이나 자갈 모래는 안식각 정도에서 멈추어 있다. 만일 상부 어느 곳에 작은 충격이라도 주어지면 금방이라도 연쇄적인 산사태가 나고 도로는 매몰되어 버릴 것이다.

다행히 날씨도 좋고, 바람도 자고 있어 별탈이야 없겠지만, 지나가는 대형트럭의 흔들림과 경적소리까지도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런데도 이 곳 차들은 짙은 매연을 뿜으며 잘도 기어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 길은 중국과 파키스탄 양국이 1962년에 착공하여 1978년까지 16년에 걸쳐 건설했으나 공식 개통은 1986년에 했다니 완전 개통까지는 4반세기가 걸린 셈이다.

짐승들과 사람들이 등짐을 지고 다니던 이 험로를 차량이 다니도록 도로를 개설한 것도 대 역사이지만,이 험한 태산준령에 대로를 만들어 보겠다는 구상이나, 계속되는 암산 절벽을 깎아 길을 만든 것은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 사례 중 빼놓을 수 없는 큰 사례일 것이다.

  이 길을 만들면서 400여명의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만 궂은일은 잘 발표하지 않는 측의 통계까지 합산하면 더 많은 인원이 희생 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평생 두 번 넘기 어려운  이 길을 지나면서 마음속으로 그분들의 명복을 빌어보았다.

 

  파키스탄 쪽의 도로는 아직도 도수로, 대·소 교량, 가드레일, 안전축대, 노면확장, 포장 등 보수·보완해야할 부분이 많지만 예산과 의지가 모자라는 듯 하고, 양쪽을 내왕하는 차량이 많아 공사도 어려울 것 같았다.

  양국의 국경, 군자랍패스를 넘어서 파쇄석으로 된 급경사지를 수 많은 S 커브를 반복하면서 고도 400m 정도 내려오면, 왼편으로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급류가 흐른다. 군데군데 도로를 가르던  도랑물들이 건너편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물들과 어우러져 제법 많은 시냇물이 된다. 지도에는 여기서부터 길깃까지를 군자랍강이라 표시했다.

 

(KKH. 파키스탄 군자랍 국립공원 지역)

  길은 강에 의지하여 방향을 정하고 태고적부터 흐르면서 만들어 놓은 벼랑의 틈새공간을 찾아 연결해  놓은 것이다.

정신없이 내려가다 보면 파키스탄 카라코람국립공원이라는 대형 간판이 보인다. 이 지역이 국립공원 지역인 것이다. 중국 쪽에서는 거리를 두고 산을 보아 왔는데, 이제는 산속에 들어와 있어서 간간히 계곡 틈으로 다른 산봉우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산 틈에 끼어서 까마득하게 보인다. 밑으로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아래 물이 흐르고 차창 위로는 보일락 말락 하는 하늘, 차창 옆으로 끝없는 병풍절벽이 쌩쌩 지나간다. 군자랍패스 정상에서 파키스탄 국경사무소가 있는 소스트까지 87km 구간은 거의 비슷한 모습이 계속 된다. 소스트 10 km못미처에 있는 군자랍 국립공원 요금소는 외국인들에게 미화 4$의 통과료를 받았다.

  소스트에서 파키스탄 입국수속을 마치고 훈자마을 Baltite까지 100km, 2시간은 카라코람하이웨이 최고의 절경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로와 산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른 모습의 산세와 경치가 바뀌면서 계속되었다. 어쩌다 강변에 자그마한 공지라도 생기면 옹기종기 몇 채의 집들이 모여 산다. 담벼락에 붙은 살구나무에는 노란 살구가 앵두처럼 가지가 늘어지게 달려있다.

계곡의 폭은 차츰 넓어지고 북측 강안으로 미루나무와 층층으로 계단식 밭들이 그림같이 나타난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제법 큰 소도시가 산자락에 깔려있고 고풍스런 성채가 하얀 만년설아래 솟아 올라있다. 이곳이 전설처럼 알려진 훈자마을이다.

이곳에서 2,3일 이상 머물러 보는 것은 어느 여행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새로운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군자랍패스 근처에서 발원한 군자랍 강은 길깃 어귀에서 길깃 강을 만나 30km 내려가서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인도의 레 (Leh)와 스카르두를 경유하면서 내려온 인더스 강과 합류한 다음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데리고 계속 내려간다.

이강들을 끼고 있는 산들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불모지다흙과 돌들은 흘러내리지 못하여 안달을 하는 듯, 금방이라도 산사태로 쏟아질 것 같은 급경사의 어린 산들이다(산은 수십, 수백억년 이상 늙어야 생명이 의지할 수 있다).  길깃 분지에서 잠시 여유를 주며 좁은 평지가 있지만 인더스 강을  만난 후에는 더욱 기세가 등등한 절벽이 계속 된다. 길은 험악한 경사의 산자락에 붙어 강을 따라 굽이굽이 돌면서 실낱 같이 이어져 간다  

밤이 되면 차량 통행까지 금지시키는 악명 높은 Diamar주의 Tatapani, Chilas 지역을 통과하며(간간히 산자락에 붙어 있는 마을과 소도시가 있긴 하지만) 인더스와 KKH는 단둘이 하는 협곡여행을 500km정도 하게 된다. 이 거리를 통과하는 데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약 12시간정도 걸린다. 여행을 보통 이상으로 좋아 할지라도 이 구간에서는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코스도 끝이 있게 마련, 불모지 태산들이 서서히 도로에서 물러나면서 양안의 거리가 멀어지고 들판도 생긴다. 이때쯤이면 해발고도는 1m 이내로 낮아지고 위도는 북위 35‘에 가까워지면서 아 열대성 초목으로 바뀌게 된다.

북위 348 동경 728 지점 파키스탄의 Biaraio에 이르러 KKH는 인더스 강과 작별하고 산과들이 활기찬 생명체들로 가득 찬 신천지에 접어들었고 사람들이 법석대는 현실세상으로 진입하면서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대장정은 이슬라마바드에서 끝을 맺는다 

 

출처 ubo님의 블로그 | 우보
원문 http://blog.naver.com/ubo/19906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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