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75위 크래쉬 ‘Endless Supply Of Pain’[한국명반]75위 크래쉬 ‘Endless Supply Of Pain’

Posted at 2010. 5. 30. 00:42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5-22 17:40


ㆍ다시 쓴 한국 헤비메탈의 역사

크래쉬의 데뷔 앨범은 한국 헤비메탈 역사에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물론 이전에도 시나위 이래 헤비메탈 음악을 해온 수많은 밴드가 있었고, 훌륭한 앨범을 만든 밴드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크래쉬는 등장과 함께 한국 헤비메탈의 흐름 자체를 바꿨다.

앨범 안의 해설지에는 “화산처럼 터져나오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에 과연 내가 실제로 크래쉬의 음반을 듣고 있나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적혀있다. 크래쉬의 데뷔 앨범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핵심이다. 그 전까지 한국 헤비메탈은 음악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녹음 기술로 인한 좌절을 겪어왔다. 제아무리 외국의 헤비메탈 음악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음악이라 해도 ‘사운드’라는 요지부동의 벽에 부딪쳐왔고, 사운드 문제는 헤비메탈을 하는 뮤지션과 그 음악을 듣는 청자들 모두에게 콤플렉스였다. 크래쉬는 그간의 콤플렉스를 이 데뷔 앨범 한 장으로 다 날려버렸다.

김수철의 작은거인이 낙후된 국내 녹음 기술을 극복하고자 일본인 엔지니어를 썼던 것처럼, 크래쉬 역시 가장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들고 나왔다. 유럽 최고의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로 각광받던 콜린 리처드슨을 앨범의 프로듀서로 영입한 것. 그는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칼카스, 네이팜 데스 등의 앨범을 제작한 특급 프로듀서였다. 데뷔 앨범 작업을 이런 거물 프로듀서와 함께 하게 된 운 좋은 세 명의 젊은이는 자신들이 가진 걸 모두 쏟아부으며 한국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헤비메탈 앨범을 만들어냈고, ‘활화산’ 같은 사운드를 만들었다.

물론 단순히 사운드만으로 얘기될 앨범은 아니다. 이들은 당시 한국 헤비메탈 신에서 비주류였던 스래시 메탈을 구사했지만, 이들의 등장과 함께 스래시 메탈은 빠른 속도로 주류의 위치에 섰다. 기타리스트 윤두병이 만들어낸 인상적인 스래시 리프들과 드러머 정용욱의 투베이스 드럼, 그리고 야수 같은 울부짖음을 들려준 베이시스트 겸 보컬리스트 안흥찬의 카리스마가 어우러진 음악은 외국의 것과 비교해 결코 뒤질 게 없었다.

비록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즐겨들었던 브라질 밴드 세풀투라의 영향력에서 그리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 폭발적 사운드만으로도 한국의 헤비메탈 팬들은 이미 열광할 준비가 돼있었다.

모든 훌륭한 앨범이 그랬던 것처럼 이 앨범은 한국 헤비메탈 신을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다른 밴드들 역시 사운드를 위해 실질적인 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 그래서 어떤 밴드들은 크래쉬처럼 외국의 프로듀서·엔지니어를 초빙하기도 했고, 국내 기술력만으로 훌륭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크래쉬의 등장으로 스래시 메탈이나 데스 메탈 같은 더욱 과격한 음악들이 한국 헤비메탈 신의 주류로 떠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당시 너바나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얼터너티브 열풍에 휩싸여있을 때도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시장은 굳건히 헤비메탈이 몇 년간 그 대세를 이어갔다. 크래쉬의 데뷔 앨범 한 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김학선 | 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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