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방인,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씨 인터뷰 (2012.07)축구 이방인,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씨 인터뷰 (2012.07)
Posted at 2013. 5. 13. 19:25 | Posted in 삶의한자락/건강한삶(레포츠,건강)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아시아축구아카데미(前 춘천 유소년FC) 총감독. / 김용일 기자 |
[스포츠서울닷컴ㅣ춘천 = 김용일 기자]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50). 이 남자의 삶은 매우 이채로운 궤적을 그리고 있다.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7경기를 치른 뒤 현대(현 울산)와 일화(현 성남)를 거쳐 K리그 통산 37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 167cm 단신이지만 발재간이 좋았고, 1987년엔 태극마크도 달았다. 그러나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살의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았다.
이후 한국 축구의 '슈퍼 탤런트' 손흥민(함부르크)을 길러 낸 아버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웅정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격렬하고 뜨겁다. 손흥민 외에도 7명의 유소년 선수들을 유럽에 진출시켰다. 창의적인 지도 방식은 유럽 굴지의 클럽 관계자들이 찾아와 관심을 보였다. 분데스리가 2부 리그 모 구단은 유소년 팀 감독까지 제의했다. 그러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한국 유소년을 지도하는 춘천 공지천이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제자를 향한 진정성 있는 손웅정의 철학은 언론의 주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제자들"이라고 말하며 언론과 담을 쌓고 살았다. 스스로 축구계 야인 또는 스라소니라고 한다. 최근 손웅정의 춘천 유소년FC는 분데스리가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아시아축구아카데미(이사장 황승용)라는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공지천에 뿌린 작은 씨앗이 시나브로 큰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는 아시아축구아카데미의 총감독을 맡아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특히 소속 선수들에겐 단 한 푼의 회비를 받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가난함속에서 '헝그리 축구'를 강요받은 그가 제자들만큼은 '개천에서 용 났다' 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단다. 돈과 명예가 아닌 이 시대의 '지도자'로 남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언론과 접촉을 더욱 꺼렸다. 자칫 진정성 없는 지도자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포츠서울닷컴>을 통해 처음으로 마음 한쪽에 자리한 속내를 털어놨다. 아시아축구아카데미 기공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7일 춘천 한 호텔에서 만난 손 감독. 대중의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냈다.
손흥민의 아버지로 손웅정(오른쪽) 감독은 축구계 야인의 길을 걷고 있는 지도자다. |
◆ "아들 국가대표 차출 거부 논란, 과정 쏙 빠진 오보"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다. 춘천FC 시절부터 감독님의 철학에 관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아시아축구아카데미 기공을 축하하며 한국판 축구사관학교가 되길 바란다.
감사하다. 이제 시작이다.(웃음) 기자님께서 꾸준히 관심 가져주신 만큼 잘 부탁드린다.
- 유럽뿐 아니라 국내 팬들도 손흥민, 김병연(오스트리아 KSV1919)을 길러 낸 손 감독의 지도 철학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동안 언론과 꽤 거리를 뒀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기자님께서 공지천에 자주 오셔서 저희 훈련을 보셨으니 아시리라 생각한다. 진정성을 느껴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싶다. 인터뷰 꺼린 이유요? 언론이 (손)흥민이 말고도 일부 선수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근거 없는 보도를 한 것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조광래 감독께서 국가대표팀에 계실 때 제가 아들 차출을 거부했다고 파문이 났었다. 당시 공항에서 아들이 당황하는 사진을 곁들여 보도했다. 그 속엔 '과정'이란 게 있다. 그걸 쏙 뺐다. 흥민이가 당황하는 사진은 그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것인데 마치 아버지 때문에 당황한 것처럼 묘사됐다. 섭섭했다. 더는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
- 당시 상황은 어떻게 된 건가?
전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는 성향이 아니다. 하지만 논란이 커졌던 이유는 공항에 오지 않은 기자 분이 마치 제 얘기를 직접 들은 것 마냥 기사를 썼다. 말이 안 되잖나? 당시 공항에 가기 전에 일부 언론을 통해 "흥민이는 대표팀에 들어갈 수준과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태하 코치가 전화로 "형님, 그런 말씀하시면 일하기 어려워진다.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말을 안 했다. 그런데 결국 흥민이가 대표팀에 뽑혀 아시안컵을 다녀왔다. (안 뛰어서) 체중이 4kg 늘어서 왔다. 속이 상했다. 분데스리가 시즌 전체에 맞춰 몸을 올렸었는데…. 이후 부진했다.
- 손흥민 선수가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를 경험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도 했다.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의 벤치 자원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전력감이 앉아야 해요. 당시 흥민이는 부족했다. 혹자는 경험을 말씀하시는데, 꾸준히 교체 투입돼 20~30분 정도 뛰었을 때 경험이 되는 거다. 무조건 다 '경험'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파 공항에서 박 코치에게 얘기한 것인데 언론은 과정을 무시한 채 제가 급작스럽게 도를 넘은 행동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 박 코치와 이미 교감을 나눈 상태라서 말을 한 것인데. 제발 근거 없는 얘기로 선수, 가족이 난처한 처지에 서지 않게 해주셨으면 한다.
- 당시 태극마크의 가치를 깎아내렸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었다.
맞다. 국가대표를 무시하느냐, 유소년의 꿈을 꺾느냐는 말을 들었다. 제가 국가대표를 무시했다면 흥민이가 들어갈 수준이 아니라고 말을 했겠나? 전 그 기사를 쓴 분을 만나고 싶다. 국가대표를 높게 얘기한 것이다. 지금도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간을 생략하지 말고, 제 의지와 다르게 해석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전 지금도 흥민이가 대표팀에 가면 늘 '겸손'을 강조한다. 언론에서 한국 축구의 '대들보'라고 묘사해도 말로만 대들보가 되면 안 된다. 늘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품고 겸손하고 충실하게 생활하라. 그래야 너도 국가대표팀도 힘을 받는다고.
'강한 남자' 손웅정 감독도 아들을 둘러싼 대중의 오해에서 심적 고통이 있었지만,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고 한다. |
◆ "흥민이, 동료 선수에 발차기? '잘했다'고 했다"
- 손흥민이 피스컵을 치르기 전 팀 동료 라이코비치가 말썽을 일으켜 다퉜는데.
제가 독일에 있을 때 라이코비치가 여러 번 말썽을 일으키는 모습을 봤다. 경기 때 불필요하게 과격한 반칙으로 퇴장당해 4~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얀센, 페트리치 등 동료와 싸운 적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날 제가 새벽 2시까지 잠을 못 자다가 흥민이와 통화를 했다. "널 변호하려 하지 말고 냉정하게 상황을 얘기해 달라"고요. 그런데 언론에 나왔듯이 라이코비치의 행동이 문제였고, 흥민이가 발로 때렸죠. 전 "라이코비치에게 맞은 톨가이가 빨리 회복됐으면 한다. 흥민이 넌 그 상황이었다면 잘했다. 만약 구단에서 벌금을 내라고 한다면 내가 빚을 내서라도 내준다. 기죽지 마라"고요.
- 유럽에선 흔히 있는 일이고, 동양인 선수에 대해 약간 얕보는 면도 있죠.
맞다. 그래서 전 어느 상황이든 네 존재감을 보이라고 한다. 유럽에선 선수들끼리 경쟁심이 엄청나게 강하다. 심지어 같은 팀끼리 경기하다가 치고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흥민이처럼 동양에서 온 선수를 무시하려고 드는 경우가 많다. 절대 그 꼴은 못 본다. 흥민이가 위축되면 그게 한국인의 이미지고 위상이 된다. 그 녀석은 제 성향을 안다. 자기가 행동했을 때 혼날 상황인지, 격려 받을 상황인지. 오히려 상대 선수에게 불합리하게 맞았으면 아버지한테 두 번 죽는다고 인식했겠죠.(웃음) (마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발차기한 것처럼?) 맞다. 전 잘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을 무시하게 하면 안 된다.
- 손흥민이 2010년 18세 3개월 22일의 나이에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었다. 함부르크 123년 역사상 최연소 골이었다. 갑자기 아들이 떴을 때 심정은 어땠는지.
아웃라이어란 책을 보면 '일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전 이것을 준수했다. 흥민이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도를 했는데, 친척 집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다. 겨울에 공지천 인조잔디가 딱딱하게 얼어 인근 학교 운동장에 넉가래를 들고 가 눈을 치우고 땅을 갈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훈련을 했다. 더운 여름에도 흥민이는 나무 그늘에 세워놓고 전 땡볕 아래서 수 백 개의 공을 던져주면서 운동을 시켰다. 손흥민이 혜성? (고개를 저으며) 세상엔 공짜란 없다.
"밥풀이 입 근처에 있어야 어울리는 것"이라는 손웅정 감독. 그는 아들은 물론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들에게 자부심과 책임감을 강조한다. |
- 한국 축구는 유난히 재능있는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했지만, 20대 중반 이후 퇴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흥민에게도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이 있다. 아버지로서 걱정되는 부분은?
늘 겸손, 성실이다. 이건 죽을 때까지 입에 붙어있어야 한다. 더는 말 할 필요도 없다. 또, 이성 친구. 시즌을 마치면 언제나 춘천으로 와서 저와 운동을 한다. 그런데 지난 시즌을 마친 뒤 흥민이가 4일 정도 서울에서 쉬게 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좋다. 대신 여자들과 어울린다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면 너랑 나랑 끝이다'고 말했다.(웃음)
- 어떻게 보면 21살의 나이에 가혹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서 운동도 좋지만 '한창 놀 때'라는 말씀을 하더라. 전 바로 반박했다. 그건 사치다. 돈이 없어서 술을 못 마시지, 술집이 없어서 못 마시느냐고. 운동선수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졌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그만한 혜택을 누린다면 포기해야 하는 가치도 생각해야한다. 은퇴하고 30대 중반 넘어서도 세계 일주 다 할 수 있고, 마음껏 놀 수 있다. 남들은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할 수 있겠지만, 운동선수로서 목표가 있다면 노는 건 사치다.
- '호랑이 아버지'도 아들이 분데스리가 데뷔 골을 넣었을 땐 칭찬했죠?
당시 독일에 있었다. 사실 흥민이가 유소년 숙소에 있었을 때 원정 다녀오면 불 꺼진 방에 들어가는 게 싫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제가 숙소에 들어가서 원래 밥을 못 해먹게 돼 있는데 밥솥을 몰래 감춰놓고 흥민이 밥까지 해줬다. 맛은 없었겠죠.(웃음) 골을 넣었을 때도 새벽 2시까지 안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흥민이가 들어왔을 때 안아줬다. 그러면서 '잘했다. 이젠 과거야. 지난 건 빨리 잊어라'하고 노트북을 뺏어 제가 묶는 호텔로 갔다.
- 트윗하기 좋아하는 손흥민인데, 골을 넣었을 땐 한 번 봐주지 그러셨어요.
트위터뿐 아니라 전부 금지했다. 골 넣었다고 도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게 다 이룬 게 아니잖나? 이제 시작이라고 암시해주고 싶었다.(웃음)
[독점 인터뷰] '손흥민 父' 손웅정 "지도자 안 변하면 韓 축구 수렁 빠져" ②
[스포츠서울닷컴ㅣ춘천 = 김용일 기자] 취재기자는 본격적으로 손웅정 감독(50)의 유소년 축구 지도 철학에 관해 듣고 싶었다. 학원 축구 지도자들과 차별화된 유소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럽 클럽의 주목을 받은 손 감독. 그는 훈련 때마다 선수들과 직접 부딪치며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단순히 훈련이라기보다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최후의 일전인 양 감독, 선수가 모든 것을 바친다. 이 모든 것이 손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 손 감독의 축구 열정과 철학은 축구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졌다. 1편에서 언론과 거리를 뒀던 사연을 공개했지만, 유소년 지도로 큰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축구계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은데.
상당히 비중 있는 질문을 하셨다. 맞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면 다른 지도자들은 '저 자식이 뭔데'라며 돌을 던질 것이다.(웃음) 난 유소년의 기본기를 중요시하지 않느냐? 한 번은 철원에서 열린 풋살대회에 나갔다. 경기를 앞두고 기본기 훈련을 하고 있는데 상대 팀 감독이 "저런 것만 하는 아이들은 공 못차"라고 말을 툭 던지더라. 난 "기다려라. 경기 때 보자"고 했다. 경기 후 그 감독은 사라졌다. 난 한국 지도자의 밥그릇에 재 뿌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내게 그런 발언을 하는 건 잘못됐다. 나도 안다. 한국 축구에서 야인이란 것을. 비주류란 것을. 하지만 지도자라면 내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제자들이 기본기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한다.
- 손 감독께서 평소 생각하는 한국 유소년 축구의 현실은 무엇인가.
한국 유소년 축구 지도자들이 변해야 한다. 자기 밥그릇 싸움에 선수, 학부모를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보내면 안 된다. 진정성 없이 감독 자리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잘났길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계속 말해야 한다. 한국 축구, 이대로 가면 수렁에 빠진다. 현재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유소년 선수에게 체력훈련 안 시킨다. 성인들도 안 한다. 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어린 선수들에게 타이어를 끌게 하고, 운동화 신고 도로를 뛰게 하고, 계단을 뛰게 하느냐. 축구 하는 아이들인데!
- 승부 세계에 노출된 한국의 유소년 축구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인가.
전 형편없는 선수 시절을 보냈다. 제자들은 저와 정반대의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제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훈련 방식부터 모든 것을 반대로 한다. 한국 지도자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 전 지금도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꼬박 밤을 샌다. 오랜 시간 유소년을 지도했지만, 아직도 내 프로그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패스 훈련을 어떻게 했을 때 실전 경기에서 상대 뒷공간을 파고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운동 시간 외엔 서점에 가서 다른 분야의 책을 사서 읽는다. 제 자랑을 풀어놓는 게 아니다. 지도자들이 알량한 자기 밥그릇 싸움에 가면 쓰고 살지 않기를 바란다. 감독은 제자들에게 희생을 하는 것이다.
- 승부 세계에 노출된 유소년들.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과거서부터 구조적인 문제였는데.
맞다.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저와 국가대표팀에 같이 있었다. 그분이 유소년 축구를 7-7, 8-8로 하자고 주장했다. 학원 축구 지도자들이 난리가 났다. 그건 아니라고. 그런데 축구 선진국에 가보라. 유소년 축구 11-11로 안 한다. 일부 지도자들은 선수가 적으면 회비 자체가 줄어드니까 꺼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입에 거품을 물면서 외치는 게 초등학생들의 기본기다. 제가 있는 아시아축구아카데미에 학교 축구부에서 뛰다 온 아이들은 기본기를 시키면 지루해한다. 재미가 없으니까. 전 '기본기가 싫으면 경기 뛰는 학교 축구부로 다시 가라'고 한다. 아이들이 볼을 다룰 수 있게 3~4년을 준비해야 한다.
- 손 감독의 유소년 지도 철학은 무엇인가.
기본기는 실전 경기에서 볼을 자유자재로 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패스, 드리블, 헤딩, 슈팅이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행할 때 경기에서 조합이 된다. 전 볼 리프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볼 컨트롤과 패스, 드리블. 마지막에 가서 슈팅을 한다. 제가 2009년 17세 이하 월드컵을 마치고 말한 것이 '앞으로 2년 뒤 21세 이하 국가대표팀에 17세 이하 선수 3명도 못 들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왜?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승부 세계에 노출돼 혹사를 당했다. 예를 들어 40이 가까운 맨유의 라이언 긱스를 보라. 어려서부터 체력 훈련을 한 것과 기본기부터 과학적으로 배운 것은 차이가 난다. 난 (손)흥민이 슈팅 훈련을 프로가 됐을 때야 했다. 무릎 고장 날까 봐.
손 감독은 훈련 때마다 선수들과 같이 뛰며 땀을 흘린다. |
학교 축구부에서 넘어온 아이들을 보면 무릎 수술 두 번 이상 한 경우가 많다. 슈팅까지 가려면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나. 과정 없이 슛을 때릴 수 있나. 볼 컨트롤을 하고 패스를 하고 돌파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만 18세 넘어 근력 운동과 슈팅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 공지천에서 훈련 모습을 보면 어린 선수들이 손 감독의 진정성을 느끼는 것 같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어린 선수들이 감독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신뢰를 어떻게 얻었나.
엄청나게 예민한 부분을 보셨다. 우리 아이들은 감독 놀이를 하고 있다. 내 약점을 알고 가지고 논다.(웃음) 이 녀석들은 '우리 감독이 나한테 소리 지르고, 구박해도 나쁜 감정이 아니라 정말 축구에 대한 사랑이 있다. 내가 발전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친 것 같다. 엄하게 훈련을 해도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농담을 한다. 학부모들은 저 감독은 나이가 몇인데 아이들과 뒹굴고 어울리느냐고 할 정도다.
- 유소년 선수를 오래 지도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
한 단계 올라섰을 때다.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가르치는 것 같다. 못 버린다. 그 순간의 보람과 희열의 맛을 느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주위에서 손웅정은 아들이 잘되고 돈을 벌면 유소년 지도를 그만둘 것으로 생각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전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빠져들었다. 정이 간다. 돈과 시간 하나도 아깝지 않다. 더 챙겨주고 싶다.
- 아시아축구아카데미는 회비를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규모가 커질수록 운영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전 이사장께 회비를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저 때문에 이사장은 동냥하러 다닌다. 회비를 받지 않는 건 여러 가지 함축된 게 많다. 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돈이 없어 축구를 못할 뻔했다. 그런 친구들도 많이 봤다. 이곳에 있는 제자들에게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듣게 해주고 싶었다. 제 뜻을 이사장께서 잘 받아주셨고, '맞다, 회비 몇 푼 받아봐야 오해만 생길 것이다. 손 감독의 말이 맞다'고 말씀하셨다. 기회를 동등하게 주고 싶다. 돈 있어서 축구를 더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대신 불성실하면 바로 아웃이다.
손 감독의 현역 시절 모습. / 스포츠서울 DB |
-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7경기를 뛰었다. 현대와 일화를 거쳐 통산 37경기 7골을 넣었다. 당시 K리그는 어땠나.
앞서 말했듯이 난 한국에서 프로선수를 했다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였다. K리그는 현재 내셔널리그 정도의 수준이었다. (승부 근성은 강했지 않나) 그렇다.(웃음) 그때도 별명이 숙소귀신이라고 할 정도로 열정은 많았다. 그런데 불의의 부상으로 28살이란 나이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알려졌는데.
일화에 있을 때 대우와 동대문운동장에서 야간 경기를 했다. 후반 40분쯤 측면에서 공을 툭 치고 돌파를 하려다가 운동장 바깥에 패인 곳에 발목이 꺾이면서 피가 났다. 교체 카드를 이미 다 소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2분 뒤 문전에 서 있다가 크로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웃음) 그러면서 버티다가 경기를 마쳤는데 밤새 잠을 못 잤다. 고통스러워서. 이후 1년 동안 경기하는 모습이 꿈에 자주 나오더라. 눈물이 나고 허무했다.
- 그 아쉬움이 유소년을 지도하라는 뜻이었나.
그런 것 같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제 자식과 후배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라는 뜻이었다고 느낀다. 실제 도움을 주고 있다.
(아들이 더 재능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 정신적인 능력은 아직 차이가 난다. 흥민이가 아버지의 근성을 따라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축구가 단 한 번도 싫다고 느끼신 적이 없나.
내 삶이 축구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셨다.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번은 친구 아버지였던 동네 이장께서 부산에 있는 신발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곳이면 이장 아들을 보내세요'라고 건방지게 말했다. 축구를 하고 싶었으니까. 또, 둘째 외삼촌도 당시 양말 사업으로 돈을 꽤 버셨는데 제게 '양말 장사를 하라'고 권유했지만, 크게 화를 낸 적 있어다. 그토록 축구가 좋았고 간절했다. 어렵게 축구를 했다.
- 유소년 지도를 통해 인생의 큰 반전을 이루신 것을 축하한다.
아휴, 별말씀을. 감사하다. 더 책임감을 갖고 해야한다.
- 유소년 선수들과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선수들은 강해야 한다. 공을 한 번 찬 사람보다 열 번 찬 사람이 성공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전 지도할 때 오늘 혼난 것을 집에 가서 느끼고 고민하라고 한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게 돼 있다. 학부모께는 핵가족시대지만 축구 경기를 하는 자식들이 정신적으로 약해지지 않게 도와줬으면 한다. 창피한 말이지만, 난 흥민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면 엄청나게 굴렸다. 제 자식이고 안쓰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가 냉정해야 아이가 강해진다.
- 마지막으로 손 감독의 꿈은 무엇인가.
난 농부의 마음입니다. 365일 파종을 한다.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열매를 거두기가 어렵다. 20~30년 후에 제 아이들이 유럽이든 K리그든 좋은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기를 바라고, 아시아축구아카데미 이사장 이하 모든 분과 여행을 다니면서 제자 경기 보러 다니는 게 소원이다.
(월드컵 우승은?) 아, 물론 해야한다. 개인적으로 흥민이가 월드컵 대표팀에 뽑혀서 골도 넣고 목표에 이바지한다면 첫 번째 꿈이 이뤄지는 것이다. 다음에 김병연 등 후발 주자들이 국가대표에 뽑혀 월드컵에서 큰일을 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한국 유소년 축구의 새 장을 연 손 감독의 꿈에 박수를 보낸다. |
스포츠서울닷컴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media.sportsseoul.com
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063674.htm (1부원문)
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064152.htm (2부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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