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반]100위 동서남북 ‘아주 오래된 기억과의 조우’[한국명반]100위 동서남북 ‘아주 오래된 기억과의 조우’

Posted at 2010. 5. 30. 01:44 | Posted in 삶의한자락/미디어(영화,음악,TV)
기사입력 2008-08-14 17:55
ㆍ당대 최고 음의 향연… 한국록 새 장 열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1980년대는 심야 라디오방송과 소위 ‘빽판’으로 불리는 해적판LP로 이야기되는 시대다. 서슬 퍼렇던 신군부의 검열로 인해 록은 움츠러들었다.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사람들은 밤새워 라디오를 듣고 종로, 청계천, 노량진을 돌아다니며 해적판을 구했다. 영미 록의 명작들이 원판 재킷 그대로 소개됐고, 선구자적인 DJ, 잡지 평론가들에 의해 이탈리안 아트 록 등 제3세계 예술주의 록들이 알려지게 됐다. 당연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미 하드록을 추종하는 그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드록을 표방한 마그마와 작은거인을 거쳐 시나위·백두산·부활로 대표되는 헤비메틀의 르네상스가 열린다. 그리고 그 자양분은 90년대 인디신의 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80년대에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룹이 바로 동서남북이다. 80년대는 캠퍼스 밴드의 한계를 벗어나 프로뮤지션의 역량을 갖춘 그룹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시기다. 대학가요제 출신 그룹들이 진화를 거듭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동서남북은 이 당시 한 장의 앨범만 발표하고 별다른 활동 없이 사라져 버렸고 98년 시완레코드에서 CD로 재발매되기까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앨범 판매고의 실패에서 보듯이 동서남북은 대중성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물론 타이틀곡인 ‘하나가 되어요’는 대중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곡이었지만 이들을 단지 ‘전설적인 그룹’으로 남게 한 것은 한국 록 최초의 프로그레시브적 시도라 평가받는 ‘나비’의 탓(공?)이 컸다. ‘나비’는 대중적인 실패를 안겨줬지만 90년대 정당한 재평가를 이끌어 낸 이 앨범의 역작이다.

‘나비’는 당대 최고의 연주였다. 앨범의 전곡을 조율한 박호준의 기타 사운드와 이태열, 김득권의 리듬 라인도 탄탄하지만 이 곡의 백미는 김광민, 이동훈 2명의 건반주자들이 품어내는 음의 향연이다. 범람하는 하몬드 올갠과 몽환적인 무그 신디사이저야말로 왜 이 곡이 당대 최전선에 위치한 록적인 시도였는지를 증명한다. 특히 건반과 베이스, 질주하는 기타가 어우러진 후반부 연주는 압권이다. 각 멤버의 역량도 대단했지만 이들의 합주는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이후에 멤버 중 박호준과 김광민은 미국으로 건너가 퓨전재즈에 몰입하며 음악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

양병집의 기획으로 결실을 본 이 앨범은 곡의 구성이 일관성 없이 다소 혼란스럽긴 하지만 곡들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을 해치진 못한다. 대중성을 목적으로 넣었다고 하는 ‘하나가 되어요’도 당대를 대표하는 서정성으로 손색이 없고 ‘모래 위에 핀 꽃’은 하드록의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암울하고 열악했던 80년대 가요계에 이 음반의 등장은 분명한 축복이다. 당대의 반향은 작았지만 유행을 뛰어넘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록의 새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신중현, 산울림의 시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가치가 있다.

<황정 | 음악동호회 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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